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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헤롯의 요새들
  • 입력:2014.01.0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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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반란 두려움에 살던 헤롯

광야 헤로디온 등에

더 높고 더 강한 은신처 건설 


성탄절은 아기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즐거운 날이다. 그러나 이 기쁜 날에 악역을 자처한 이가 있으니 그는 헤롯 왕이었다. 헤롯은 유대인의 왕을 보러 왔노라 말했던 동방박사들에게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자신에게 고하여 경배하게 하라고 말했다. 아기를 죽일 속셈이었지만 박사들은 베들레헴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헤롯은 박사들이 찾아왔던 때를 기준으로 두 살 이하의 유아들을 모두 죽였다(마2:1∼15). 신약성서는 이 일이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도다”(렘31:15)라는 예언을 이룬 것이라 말하고 있다.

헤롯은 유대 정통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는 에돔의 후예인 이두메아 출신으로 유대인의 역사와 율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마사다와 가이사랴를 다루면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항상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았다.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대단했다. 유대인들의 율법에 금해져 있는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만들지 않았고 그들을 위한 성전을 짓는 데 힘썼다. 무엇보다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주고 유대인들의 반란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로마를 신봉했다. 헤롯은 로마에 선물 공세를 했고, 로마 황제 가이사를 위해 도시들을 건설했다. 그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광야에 자신과 가족이 피신할 수 있는 요새를 건설해야만 했는데 대표적인 곳이 마사다, 헤로디온, 마케루스다.

헤로디온,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다

주후 1세기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은 주전 40년 헬라시대 유대인 제사장 왕조인 하스모니아 왕조와 고대 이란계 유목민이었던 파르티아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헤롯은 승리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요새와 궁전을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라 헤로디온이라고 불렀다. 요세푸스는 요새 모습을 그의 저서 ‘유대 전쟁사’와 ‘유대 고대사’에 자세히 기록했다.

“헤롯은 요새로 사용하기에 적당했던 언덕을 더욱 높게 그리고 둥글게 다듬어 마치 가슴 모양처럼 봉긋하게 만들었다. 요새는 둥근 탑들을 갖고 있고 200개의 계단을 올라가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으며 방어가 잘 돼 있었다. 안에는 왕실이 사용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방들이 있었다.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멀리서 물을 끌어들였으며 요새 주변에는 도시가 형성됐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2㎞, 베들레헴에서는 남동쪽으로 5㎞ 떨어진 유대 광야와 산지의 경계 지역에 아랍어 ‘자발 푸레이디스’라 불리는 언덕이 있다. 19세기 학자들은 이 언덕을 헤로디온이라 보았다. 로마시대 헤로디온은 헤로디스(Herodis)라고도 불렸는데 유사한 발음이 현대 아랍어에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세푸스가 설명했던 봉긋한 가슴 모양의 60m 높이 언덕 위에서 고대의 흔적들이 발견됐다. 헤로디온에서 발굴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다. 72년부터는 히브리대학의 에후드 네체르 교수가 발굴에 참여해 2010년 죽는 날까지 계속했다.

헤로디온은 언덕의 요새와 언덕 앞 북쪽의 너른 평야에 펼쳐져 있는 직사각형 연못을 둘러싼 건물들로 구성돼 있었다. 인공 연못은 넓이 70×46m에 깊이 3m로 수영보다는 작은 배를 띄워 여흥을 즐겼던 장소로 보고 있다. 연못에 물을 채우기 위해 서쪽 솔로몬의 연못이라 불리는 곳에서부터 수로를 연결했다. 연못 중앙에는 지름 15m의 둥근 건물을 세웠는데 한때 지붕이 덮여 있었던 것으로 미뤄 연회 장소였을 것으로 보인다. 연못을 중심으로 펼쳐진 방들에는 화려한 기둥머리가 얹어져 있던 기둥들과 250m 길이의 화려한 정원이 있었다. 왕좌의 방과 손님용 방들 그리고 목욕탕, 곡식 저장고 등도 발견됐다.

요새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요세푸스가 말한 것처럼 많은 계단을 따라가야만 했다. 요새는 하늘에서 내려다봤을 때 언덕을 파고들어가 건설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언덕 꼭대기 전체를 차지하며 지름 62m 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요새는 외벽과 내벽이 있어 이중으로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한때 요새 전체는 30m 높이에 7층 규모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모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4개의 탑이 있었는데 3개는 반원 형태였고 가장 높은 동쪽 탑의 경우 원형이다. 지름이 18m나 됐다. 탑 안의 화려한 방들은 왕의 거주지로 사용됐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가장 좋은 은신처였을 것이다. 헤로디온은 헤롯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도 은신처 기능을 했다. 주후 70년 헤로디온은 마사다와 함께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 항거 장소였다. 요새 안에서 발견된 41×18m 크기의 정원은 주전 70년쯤 유대인들에 의해 회당으로 변경돼 사용됐으며 주후 132∼135년 바르코크바를 중심으로 항거할 때도 유대인들의 요새로 사용됐다.

헤로디온을 발굴한 네체르 교수는 헤롯 마니아라 불릴 정도로 헤롯에 관한 연구와 발굴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헤로디온은 특별히 그의 모든 생이 담겨 있는 장소다. 네체르 교수의 가장 큰 목표는 헤롯의 무덤을 발견하는 데 있었다. 헤로디온 구석구석을 뒤진 결과 2007년 연못의 남쪽 언덕 서쪽 끝에서 12×9m 크기에 높이 7m의 기념비적 건물이 발견됐다. 건물은 350×30m의 긴 홀과 연결돼 있어 네체르 교수는 이 홀이 헤롯 왕의 장례 행렬을 위한 길이라고 보았다.

아직도 몇몇 학자들은 이 건물이 헤롯의 무덤이라는 의견에 반대하고 있으나 이스라엘 박물관은 2013년 헤로디온에서 헤롯의 무덤을 옮겨와 특별전시를 한 바 있다.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네체르 교수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헤로디온에서 사망했다.

마케루스, 세례 요한의 처형 장소

마케루스 역시 헤롯이 건설한 요새로 후에는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들의 은신처로 사용됐다. 마케루스는 현재 이스라엘이 아닌 요르단 땅에 있다. 요단강 입구에서 동쪽으로 24㎞ 떨어진 지점이다. 처음 이곳에 요새를 건설한 이는 하스모니아 왕조의 알렉산더 야네우스(주전 104∼78년)였으나 로마에 파괴됐다가 헤롯 왕이 영토의 동쪽 경계를 관리하기 위해 주전 30년 재건설했다.

요세푸스는 그의 ‘유대 전쟁사’에서 다른 광야의 요새들처럼 헤롯이 마케루스를 얼마나 강하게 요새화했는지 설명했다. 마케루스의 위치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검은 요새’라는 뜻을 가진 마케루스라는 이름이 요단 건너 언덕에 아랍어로 비슷한 발음인 ‘무카웨르’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968년 이후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여러 나라 학자들이 발굴에 참여해 이곳 언덕 위에 세워진 또 다른 헤롯의 화려한 요새를 찾아냈다.

헤롯이 죽고 마케루스는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의 소유가 됐다. 헤롯 안티파스는 도덕적 문제로 악명이 높았는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았다. 성서는 세례 요한이 이 부도덕한 사건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옳지 못하다고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혔다. 주전 32년쯤 유월절 전에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이 됐다. 그는 생일에 춤을 춘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노라 약속했다. 살로메는 요한의 머리를 원했다(마14:1∼12, 막6:14∼29, 눅9:7∼9).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18, 118∼119)에 세례 요한이 처형된 이 사건이 바로 마케루스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 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 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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