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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성지 발굴 상황과 성서고고학의 새 전망


                                                            이 정복 목사 
                                                 이스라엘성서연구소 소장 


들어가기 


이스라엘의 고고학의 특징은 두가지 면에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양대문명권 즉 에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 는 육교적인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 둘째로는 용기와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는 커다랗게 형성된 지역의 자연환경과 관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고고학은 찬란하게 때로는 세계의 3대종교 즉 유대교, 기독교, 회교와 관련되어 복잡하게 이루어지기도 하였 다. 고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실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앙을 생각해야만 하기도 한다. . 이런 관점에서 먼저 유물과 관 련하여 시대를 구분하여본다.(1(이스라엘 박물관 자료 ) 




선사시대(1,500,000-4,500BC)
1,500,000 구석기 시대
20000 변환기 구석기 시대
8500 신석기 시대

동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4,500-538BC)
4500 동석기 시대
3500 초기 가나안(청동기) 시대
2300 중간기(중간 청동기)
2000 중기 가나안(청동기) 시대
1550 후기 가나안(청동기) 시대
1200 전기 이스라엘(철기 1) 시대
1000 후기 이스라엘(철기 2) 시대

제 2 성전 시대(538BC-324AD)
538 페르시아 시대
332 헬라 시대
37 BC 헤롯 시대
70 AD 로마 시대

기독교와 이슬람 시대(324- )
324 비잔틴 시대
638 초기 이슬람 시대
1099 십자군 시대
1250 후기 이슬람 시대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하여 동석기 시대 이후 이스라엘시대까지 특징은 다음과 같다.

동석기 (4500-3500 BCE)는 석기와 청동기 사이 시대이며 (영어의 Chalcolithic 라는 말은 헬라어 lithos(돌) 와 cha lcos(구리)의 합성어 이다. 이시기에 농업이 시작되고 가축이 사육되기 시작한다. 경제 및 예술 감각의 발달은 이 시대를 풍 성하게 만들었다. <시진 1> 


초기 가나안 (청동기) 시대 (3500-2300 BCE)에는 도시화가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도시는 네겝사막 북부의 아라 드이다. 주거의 모습, 요새화된 성벽, 성문등을 볼 수 있다.. <사진 2>





중간기(2300-2000 BC)는 초기 청동기와 중기 청동기 사이를 말하며 이 시기의 경제 사회 정치 조직이 전시대와 후 시대와 다르 기 때문에 구분한다. 사회 구조는 더 작아져 이동이 쉽도록 조직되고 때로는 유목을 하게 되는 데 이는 초기 청동기 시대의 대단 위 도시화가 붕괴한 후에 나타나게 된다. 

중기 가나안(청동기) 시대 (2000-1550 BC)는 이집트의 중왕조 메소포타미아의 하무라비의 옛 바벨론 시대와 상응한다. 도시 국 가 등장한다. 국제화 시대이다.
<사진 3> 






후기 가나안(청후동기) 시대 (1550-1200 BC)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다. 이시기에는 사치스런 물품 즉 토기 금속, 보석 등이 이 집트, 그리스, 사이프러스,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부터 수입되었다. 이 시대의 무덤, 신전, 궁전들이 전역에 걸쳐서 발견 되고 있다. 반면에 정착지가 줄어들어 다시 유목에로 돌아 가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셈어의 알파벳이 고안되고 유리 그릇이 등장한다. 
<사진 4,5>





초기 이스라엘 시대(철기 I, 1200-1000 BC)는 전통적으로 가나안 정착시대. 사사를 중심으로 각 지파별로 정착한 시대.말기에 국가가 한 지도자(사울과 다윗)에 의해 통치된다. 그러나 해안에는 불레셋 사람들이 거주하기에 이들과 전쟁이 끝이지 않았다. 유물들에는 다양한 문화의 요소가 나타나 있다(불레셋 지역에서는 새 장식 토기가, 중앙산지에서는 저장용 대형 항아리가 만들어 졌다. )

후기 이스라엘 시대 (철기 II 1000-587 BC)는 제 1 성전 시대. 다위과 솔로몬에의 통일 왕국시대로부터 분열 왕국 시대를 거쳐 북 왕국의 멸망(722BC) 남왕국의 멸망(586 BC)때까지이다.<사진 6>. 






.I 현대 성지 발굴 상황

이스라엘 국내로 한정하여 1948년 이후에 진행된 유적지 발굴 목록을 살펴보고, 1998년에 진행된 발굴지에 대한 정보들을 살펴 보고 최근의 고고학 유물 및 유적 발견에 대한 것을 정리 하여 본다.



1) 1948년 이후 발굴된 유적지(2


1948년 이후에 발굴된 중요 유적지는 다음과 같다.

단(66-, 고고학청 및 예루살렘 넬손그릭 성서고고학학교), 하조르(55-58, 히브리 대학), 악고(73-, 하이파 대), 골란 고원 (74- , 고고학청, 87-, 텔아비브 대), 므깃도(60-71, 히브리대), 벳샨(83, 89-, 히브리 대), 도르(80-, 히브리대), 욥바(55-74, 에레 츠 이스라엘 박물관), 아펙(72-85, 텔아비브 대), 실로(81-84, 바일란 대), 성전산(68-79, 히브리대), '오펠'(85-87, 히브리대), 유대인 지역(69-82, 히브리대), 성채(여러 시기, 이스라엘 박물관 , 시립 박물관), 다윗성(78-83, 히브리대), 힌놈 묘지(79-88, 텔아비브 대), 라맛 라헬(59-62, 히브리 대, 84, 텔아비브 대), 텔 바타쉬(팀나)(77, 미 남 침례 대, 히브리 대), 미크네(에크 론)(81(올브라이트 고고학 연구소, 히브리대), 벳세메쉬(71-73, 고고학청), 아쉬돗(62-73,고고학청 ), 아쉬켈론(85, 시카고 대 동양연구소), 라기쉬(66, 히브리 대, 73, 텔아비브 대), 엔게디(61-65, 히브리 대), 아라드 철기(62-64, 히브리 대), 아라드 초 기 청동기(64, 이스라엘 박물관), 브엘세바(69-74, 텔아비브 대), 카데스 바르네아(75-82, 고고학청), 팀나(64-, 에레츠 이스라 엘 박물관) 등이며, 이 외에도 여러 곳이 전국에 산재 해 있다.


2) 1998년 발굴 유적지

1998년 봄과 여름에 발굴이 진행된 유적지를 아래에서 살펴본다. 아직 발굴 결과가 보고되지 아니 하였기에 유적지에 대한 간략 한 소개와 책임자 등을 알아본다.(3

세포리(5.5-27, 6.9-7.14)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도시이며 나사렛에서 6 km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비잔틴 시대까지는 갈릴 리 지방의 수도였고, 유대인들에게도 생활의 중심지였다. 발굴 책임자는 남 후로리다 대학 종교학과 교수인 제임스 F. 스트레이 지 박사이다.

텔 탄니님(5.25-7.3)은 '거북이의 도시'로 알려진 가이사랴 남쪽 5 km에 위치한 고대 항구 도시 이며, 지중해 해안 탄니님강 남 쪽 강가에 위치한다. 책임자는 뉴욕 룻저스 대학의 R. 스티글리츠 교수이다.

가이사랴(육지-5.31-7.23, 수중-5.24-7,23)는 헤롯이 건설한 로마 시대 항구 도시로 많은 유적이 발굴되었고 복원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발굴 책임자는 메릴랜드 대학의 케네스 G. 홀름 교수와 하이파 대학의 아브너 라반 교수 및 요셉 피트리히 교수이 다.

라맛 라헬(6.14-7.31)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으며, 후기 헬라 시대부터 후기 오토만 시대의 '저 층' 수로를 발굴한다. 책임자는 고고학 청의 요나단 나델만 이다.

텔 므깃도(6.14-7.31)는 이스르엘 평야의 아풀라 근처에 있으며, 아마르나 문서, 성서, 시리아 문서, 요한 계시록 등에 언급되 어 있는 곳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후기 페르시아 시대까지의 유적이다. 최근에는 초, 중, 후기 청동기 시대와 철기 II 시대의 초, 중, 후기를 발굴하고 있다. 책임자는 텔아비브대학 고고학 연구소장 겸 고고학 주임 교수인 이스라엘 후랭크스타인 교수와 펜실바니아 주립 대 유대연구원장인 바룩 할펀 교수, 그리고 텔아비브 대학 성서고고학교수 다비드 우스쉬킨 이다.

텔 하조르(6.23-8.24)는 갈릴리 북쪽 훌라 평야 서쪽에 위치하며, 가나안 시대와 이스라엘 시대의 건물들이 발굴되어 있다. 책 임자는 히브리대의 A. 벤-토르 교수이다.

텔 르호브(6.28-8.27)는 벳샨평야의 제일 큰 도시였는데, 이 곳 발굴은 1997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철기I기(주전12-11세기) 에 주거가 시작된 것으로 발굴 결과 밝혀졌으며, 주전 10세기(다윗과 솔로몬 시대)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철기 II기 도시의 유적들은 주전 732년에 파괴된 것을 보여 준다. 98년은 97년에 이어 주전 10세기 층을 주로 발굴한다. 책임자는 히브리 대학의 A . 마잘 교수이다.

크파르 호레쉬(6.29-7.17, 7.19-8.6)는 작지만 9000년이나 된 유적이다. 전 토기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하부 갈릴리 나사렛 산지에 있다. 초기 신석기 시대 문화의 유적이 근처에 산재해 있다. 세계에서 최초로 농경사회가 형성된 곳이다. 제의 센터 등이 발굴되고 있다. 책임자는 히브리대의 나이겔 고링 박사이다.

텔 도르(7.1-8.7)는 가이사랴 남쪽 9 km 에 있는 낙숄림 기브츠 근처에 있는 고대 항구이다. 솔로몬 왕 시절 주 항구였으며, 가 나안, 페니키안, 이스라엘, 앗수르, 페르시아, 헬라와 로마 시대에 걸친 도시이다. 책임자는 산타 바바라 대학의 라이너 맥 교수 와 버클리 대학의 앤드류 스튜어트 교수이다.

샤하르 하골란(7.5-8.14)의 신석기 시대 마을(약 8000-7500년 전)은 이스라엘 내 선사시대의 가장 크고 중요한 예술쎈터이다. 1 50 점 이상의 예술품들이 표면에서 수집되었다. 공공 건물을 발굴한다. 책임자는 히브리 대의 요셉 가르핑켈 박사이다.

엘-아르왓(7.19-8.13)은 샤론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철기 I 기의 유적이다. 책임자는 하이파 대학의 아담 제르탈 박 사이다. 


3) 유물 및 유적 발견(4

신석기 및 동석기 유적지(10.21)가 여리고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가술 유적지와 유사하며, 여리고 지도 작성을 위한 조사 에서 발견되었다. 하나는 가술에서 20 km 서쪽에 위치하며, 토기, 석재, 부싯돌 사용 등이 가술 지역과 흡사하다. 토기와 장식 문양도 닮았다. 90듀남(약 3만평)지역에 30개의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다. 또 다른 지역은 히삼 궁전 남쪽에 있으며, 가술 마을 의 항구로 알려진 곳이다. 30듀남(약 1만평)지역에 6개의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다. 가술 문명에 버금 가는 동석기 시대의 유적 이 요단 강 서안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사진 1 >

벳샨에서 금화(10.21)가 300여 개 출토되었다. 옛 성 동남쪽 성밖에 있는 무덤에서 나왔다. 이 금화는 무덤에 부장된 항아리 속 에 들어 있었다. 벳샨 발굴 팀은 이외에도 건물, 성벽, 비잔틴 시대의 저수조, 로마시대의 유적, 마멜룩시대의 토기들을 발굴하 였다. 이 곳은 비잔틴 시대 유적지의 근처이며, 유물 유적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출토품으로 미루어 보면, 로마시대는 무덤, 비잔틴 시대와 아랍시대, 초기 마멜룩시대는 주거지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6000여 년 된 유골(9.9)이 1993년 겨울 "두루마리 작전"기간에 여리고 북쪽 굴에서 발견되었다 이 유골은 밀짚 깔개 위에 6000년 동안 놓여 있었다. 45세 된 남자로 이 쌈군의 유골 옆에는 활, 나무 그릇, 밀짚 바구니, 가죽 쌘달, 붉은 색 옷 감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국립 유물 수집 큐레이터인 하바 캇츠 부인은 여리고 지역이 건조하기 때문에 유물들이 아주 잘 보존되 었으며, "이 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옷감은 품질이 아주 좋은 것이며, 길이가 7 m, 넓이가 2 m 나 된다. 중동 전지역에서 이와 같은 것이 발견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한다.(5 <사진 2>

"쌈꾼 동굴"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미국 자연사 박물관에서 1998년 8월14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시되고 있다.(6

유다광야:유다광야의 많은 동굴들은 고고학 유물의 발견지로서 중요하다. 시대에 따라서 이 동굴들은 주거지와 피난지로 사용되 었다. 위험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이 동굴을 은신처로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귀중품을 보관해두는 곳으로도 활용하였다. 건조한 기후가 이들을 잘 보존하여 주었다. 지난 반 세기동안에 사해지역에서 유물의 발굴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특히 2000여 년 된 사 해사본의 발견은 성서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 들 중에는 성서, 종파 문서, 개인 문서, 옷 감등 아주 진귀한 것들이 많다. 또 동석기 시대 (주전 4천년 대) 의 유물이 나할 미쉬마르에서 발견되었다. 400여 점에 달하는 유물들은 대부분이 구리 제품이다 . 나할 헤메르에서는 9000년 된 유물들을 발견하였다. 이 유물들은 당시 제의와 관련된 것들도 있다. 유골을 장식한 것을 볼 수 있고, 돌 가면, 신상 도는 동물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전 4000년대의 매장의 모습이 와디 마쿡에 있는 "쌈꾼 동굴" 에서 발견되었다. <사진 3-동굴, 4-유골, 5-옷감, 6-활>

가멜산의 후르밧 캅-라맛 루빈의 발굴을 주관한 이스라엘 고고학 청은 이 곳에서 복합 구조물을 찾아 냈는데 포도주 틀과 비잔 틴 시대(6-7세기)의 교회가 포함되어 있다.(7 고고학 청의 고고학자 에드나 스턴은 이 수도원은 이슬람시대에 파괴되었다고 주장하며, 8세기말에는 그릇을 만드는 작업장이 여기 있었다고 본다. "십자군 시대(12-13세기)에는 이 곳에 큰 석조 건물 이 건축되었다"(8 고 그는 말한다.<사진 7>

엔게디 고고학 공원(8.25)이 금년 8원 25일에 준공되었다. 이 공원은 엔게디 기브츠 근처에 있으며, 역사와 고고학 유적지로서 미수나와 탈무드 시대의 유적인 주거지와 회당이 있다. 옛 회당 바닥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는데 거기에 꽃과 새들이 그려 져 있고, 아람어로 된 문구도 있다. "이 마을의 비밀을 찾아내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9 라는 내용이다. 이 문구 에 기초하여 연구자들은 이 공동체의 비밀은 향수를 생산하는 비결이었다고 본다. <사진 8>

기독교인 묘지(8.11)가 피스갓 제에브 공사장에서 발견되었다.(10 십자가로 장식된 등잔도 함께 발견되었으며, 출토된 유리잔 들과 장신구들로 미루어 보아 비잔틴 시대(5-6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사람의 유골을 담은 34개의 항아리는 종교성의 장례위원 회의 주관으로 타 지역으로 이장되었다.<사진 9>

다윗 성내의 재발견(7.22): 론니 라이히 박사 일행이 최근에 '워렌샤프트'를 다시 발굴하였다. 이 결과 이 급수 시설은 가나안 시대(1800BC)에 건설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지금까지는 이 시설은 다윗 솔로몬 시대(1000BC)에 건설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 구 조물의 세부를 정밀 발굴 조사한 결과 중동에서는 가장 복잡하고 특수한 구조임을 밝혀냈다. 발굴이 완료되면 (1년 이내) 방문자 들은 옛 길을 따라서 지하로 들어가서 샘 근처의 출구로 나가 기혼 샘으로 내려가서 약120m의 (지금은 막혀 있는 )터널을 통과하 게 된다.(11 



II. 중요 유적지 중에서

중요 유적지(텔) 중에서 몇을 골라 그 발굴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이사랴는 헤롯 통치 시대(22-10BC)에 건설된 항구 도시로서 로마의 팔레스틴 통치의 사령부였다. 후기 비잔틴 시대는 기독 교의 중심지였고 그후 640년부터 이슬람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1101년에 십자군이 이 곳을 점령하여 성을 건설하게 된다. 십자군 은 1265년까지 주둔한다. 그후는 모슬렘시대로 이어진다. 이 가이사랴는 제1천년대의 세계 변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교에 서 기독교로, 다시 모슬렘의 통치를 거치면서 많은 특징을 간직하고 있다.
헤롯이 로마 황제를 위해서 건설한 이 항구는 팔레스틴에서 거대한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주요 항구로서 역할을 하였고, 바울이 투옥 당하고 로마로 호송된 곳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 발굴이 시작되어 주거지, 수로, 목욕탕, 경기장, 극장 등과, 종교적 성 소들, 인공항만시설이 발굴되었고, 토기, 동전, 금속붙이 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대단위 발굴 작업이 총체적으로 진행되며, 복원 하여 옛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K.G. 홀룸은 '신전 터 위의 이교에서 기독교로'(12라는 글에서 1995년과 6년에 로마신전터 발굴을 설명한다. 이 신전은 서북쪽 에 있었으며, 그 크기는 남북이 29.5m 동서가 54 m 나 된다. 이는 유세비우스의 글 유대인 전쟁(1.415)(13에 묘사된바와 같다. "항구 입구 맞은 편 높은 곳에는 황제의 신전이 높이 솟아 있고 매우 크고 아름답다." 이 신전이 신의 모습을 잘 나타 내고 있다는 의미로 "거기에 서 있는 황제의 석상은 올림피아에 있는 제우스에 버금가며..."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론니와 리사는 주변에서 그 지역 돌인 쿨칼을 다듬어 건축 자재로 사용한 파편들을 50여 점 이상을 찾아내었다.
이 신전의 같은 터 위에 바닥이 8각형으로 되어 있는 교회가 발굴된 것이다. 이 교회는 500AD. 년대에 건축된 것이다. 이 교 회 외에 이 밑에 있는 신전의 유적은 고대의 도시가 기독교 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우이다. 신전 터 위에 교회가 세워 진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2) 므깃도는 7000BC경부터 성서시대에 걸쳐 근동의 중요한 국제통로였다. 유적들 즉 신전, 별궁들, 견고한 요새, 특수 급수시설 , 유래 없는 보물급 유물들로 인하여 이 유적지는 성서고고학의 면류관이라 부를 수도 있다고 본다.(14 서부 아시아에 유포되어 있는 전쟁이야기와 관련해서 주전 15세기 이집트 왕국의 바로 투트 모세 III 때에 가나안 원정을 시작함으로 이 전쟁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므깃도는 고고학 및 역사 유적지로 가나안, 이스라엘, 뷸레셋, 앗수르, 페르시아시대에 이르는 성서시대와 오토만 터키, 현대 영국통치 시대와도 관련되어 있다. 이 곳은 6000년간(7000-500BC)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이곳의 중 요성은 국제무역과 통행을 통괄하는 요지라는 것이다. 남으로 이집트와 북과 동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와 연결하는 비아 마 리스에 위치한 이 곳의 전략적 위치는 좁은 고갯길에서 비옥한 이스르엘 평지로 내려나오는 병목을 통제하도록 역할을 부여하였 다. 
세차례에 걸쳐서 유적이 발굴되었다. G.슈마헤르가 1903-5년에 독일 동양연구회의 후원을 받고 발굴하였고, 1925년에는 시카고 대학의 동양연구소가 다시 시작하였다. 대대적이 작업이 수행되었으며 1939년 세계 제2차대전이 일어나 중단되고 말았다. 이 시 기에 중요한 20층이 발굴되어, 신전지역, 요새, 물공급시설, 그리고 소위 솔로몬 마굿간 등이 발견되었다. 그 후 이갈 야딘 교수 가 1960년에 몇 차례 걸쳐서 발굴하였고, 70년대에는 히브리대학의 후원으로 발굴이 지속되었다. 이 므깃도의 발굴로 성서고고학 의 체계가 세워지게 되었다. 
현재에도 발굴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H구역에서는 앗수르 왕이 옛 궁전 터에 지은 궁전이 발견되었다. 이는 앗수르가 이 곳을 중요시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밑에는 이스라엘 말기 주거 층들이 뭍여 있는 것이다. 여기에 주거를 정했던 이스라엘 말기는 마침내 앗수르의 티글랏빌레 셀III(732Bc)에 의해서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98년엔 성서시대 이스라엘 즉 주전 10-9세기를 발굴한다. 맨 마지막에는 후기 청 동기 시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 까지 가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J지역에서는 신전이 발굴되었고, 초기 청동 기(주전 4천년 대)로부터 후기 청동기(주전 12세기)의 유적들이 발견된 구역이다.

3)세포리는 나사렛에서 6 km떨어진 로마 비잔틴 시대의 도시이다. 1931년에 미시건 대학에서 처음으로 발굴하였다. 그후 1983년 부터 후로리다 대학에서 제임스 F. 스트렌지를 단장으로 하여 발굴을 계속해 오고 있다. 이 세포리는 제1차 제2차 유대인 독립운 동기간에 유대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단 곳이기도 한 로마시대 이 지역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이다. 2 세기에는 이곳을 디오가이 사리아라고 불렀고 유대인들의 지성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래서 여기서 미쉬나가 편집되었고, 4세기에는 교회가 건축되기도 하 였다. 이 디오가이사랴 대주교 마셀리우스는 518년에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하였다. 헬라어가 기록된 상인방(문틀 위쪽)이 교회 안에서 발견되었다.
옛 기록에 세포리에 극장이 있었고, 회당은 10개나 있었고, 교회와 의사당과 화폐주조소(세포리는 자체의 화폐를 가졌음), 거대 한 급수 시설 및 묘지를 언급하고 있다.(15 1983년도에는 31년에 발굴한 유대 맨션을 다시 발굴하였다. 목욕탕시설과 거대한 시장건물(혹은 바실리카)도 발견하였다. 이 건물은 1세기에 세워졌으며 350넌 간 사용되었다. 그 동안 발굴된 상황은 1993년부 터1997년까지의 발굴 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다.(16



III 텔 르호브의 발굴과 전망

이 유적지는 이스라엘 북 동부 즉 갈릴리 남쪽 벳샨 동쪽에 위치하며, 1997년에 발굴이 처음 시작된 곳이다. 매우 큰 유적지 중 하나이고, 주전 2000년대에 이집트 문서에 여러 차례 언급된 갈릴리 남쪽, 요단강 바로 서편에 있는 둔덕이다. 이 르호브가 지난 해까지 역사에 사라져있었던 것이다. 
이 유적이 발굴되면서 이집트 신 왕조시대, 즉 사사 시대, 사울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땅의 큰 도시 중 하나인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밝혀지게 된다. 철기I(주전12-11세기) 지층에 형성 된 주거 층이 발굴되었다. 여기 까지 이르면서 잘 보존된 큰 건물이 발견된 두 주거층(다윗과 솔로몬의 통일 왕국)과 주전 732년 에 앗수르가 파괴한 철기 II도시의 유적들이 나왔다. 후자의 도시는 8 m 두께의 성벽으로 둘러 쌓여 있으며, 이 성벽은 흙벽돌로 쌓은 것이 다. 이 성은 앗수르 공격에 함락되었고, 도륙의 증거가 8세기 방에서 발견되었다. 유물들 가운데는 주전 10세기의 토기 항아리와 독특한 토기 제대와 점토 신상들 철기 II 도시의 것들도 있다. 지구문리학적 탐사는 큰 건물과 성문이 발굴될 것 을 관측하고 있다.

1) 텔 르호브의 발굴 현황(1997년 발굴 보고서)(17 
벳샨 평야는 시리아 아프리칸 단구지대에 형성된 요단 평야의 일부이다. 벳샨 지역에 유적과 유물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보면, 이 스라엘 땅에서 많이 정착했던 곳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벳샨 고고학 발굴 프로젝트(BVAP)는 지역적 프로젝트로 .청동기 및 철 기 시대의 벳샨지역의 주거 역사와 고고학 유물을 탐사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히브리대학 고고학 연구소의 A.마잘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다. 이 사업은 1989-96에 9차에 걸친 마잘 교수의 텔 벳샨의 발굴 작업의 확장 사업으로 진행된다.
르호브("거리")는 성서와 고대 근동자료에 언급된 여러 도시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갈릴리 서남쪽에 두 도시가 있 고, 시리아에 하나가 있다. 벳샨지역의 르호브는 성서에는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집트 신 왕조시대의 여러 자료에 가나안의 중요 도시로 언급되어 있다. 투트모세의 목록에 87번째 이름(위치는 일치하지 않음)으로 나와 있으며, 다아낙의 아카드 서신 2번 22줄에 나타나 있고, 벳샨의 바로 세티 I 의 석비(1300BC)에 긴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벳샨 지역에서 3도시가 이집트에 반기를 들었으나, 르호브 만이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파피루스 "아나사티스"(1200BC경)에는 "기 도합니다. 쿠엔의 모습을 말해주시오. 르호브를 알려주시오. 벳샨과 티르카-엘을 설명하여 주시오..."(18 라고 기록되어 있 다.
이 텔 르호브(아랍어로는 텔 에스-사르)의 위치를 확인하는데는 근처의 아랍 세익의 무덤이 세익 라합이라 불리는데 근거하여 확인하였다. 
텔 르호브는 이스라엘의 큰 텔 중의 하나이다. 둔덕은 평평한 평지에 있으며, 요단강 서쪽 6km, 길보아 산에서 3 km 동쪽에, 벳샨에서 5 km 남쪽에 있다. 텔 르호브는 요단계곡의 남북간 도로를 제압하는 위치이다. 넓이 120 듀남 (약3.5 만평)인 이 둔덕 은 40듀남(약1만평)의 높은 둔덕,80듀남(약2.5만평)은 낮은 둔덕으로 되어 있다. 두 지역 모두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다. . 
1997년에 5개 지역에서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A 지역에서는 9 구역으로 나뉘어져 L 모양으로 발굴이 진행되었다. 발굴 1주에 주거 층이 나왔으나 건물은 나타나지 아니하였다. 불탄 화덕의 자리를 발견하였다. 이 층이 2 m 이상 된다. 북쪽에서는 다져진 바닥과 돌로 기초가 되어 있는 벽이 
나타났다. 우마에드 시대의 토기가 나왔으며 말기 마멜룩 시대의 층도 나타났다. 
A5층:초기 철기 II 층. 흙벽돌 벽, 벽돌 부스러기, 주거 바닥, 철기 II의 토기.
A4층:철기 II의 주거 유적. 흙벽돌 벽, 바닥, 뜰과 화덕.
A3층:A4충이 파괴된 후에 그 위에 형성된 층. 전 시기의 벽의 흔적을 따라 새로운 벽이 건축되었고, 또 다른 벽은 전혀 새로운 곳에 세워졌다. 앗수르 정복 시에 생긴 파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두 방에서 나온 유골은 살륙당한 것을 보여준다. 한 유해는 두 개골이 없다. 토기 몇 점이 출토되었는데 전형적인 주전8세기 모습을 나타내주고 있다. 근처의 방에서 젊은 여인의 유해가 나 왔는데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그 자리에서 죽은 모습이다. 이 것은 철기 II의 파멸이 모습을 말 해 주는 것이다. 서쪽 뜰에 는 커다란 화덕이 있다. 
A2층:구덩이 무덤. 사람의 뼈가 나왔다.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구덩이 근처에서 앗수르 병도 나왔다. 이 것은 앗수르의 점령 을 시사해준다.
A1층:윗 층으로 아랍 시대의 층이다. 고고학적 유적은 발견되지 아니 하였다.

B지역에는 6개 구역(150m2)으로 나누어 발굴하였다. 높은 둔덕과 북쪽 비탈, 낮은 둔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C지역은 8구역으로 나뉘어 총 200 m2가 발굴되었다. 낮은 둔덕 최상부구역, 북서 모서리. 목적은 낮은 둔덕의 최후 주거 층을 연구하기 위해서 이다. 결과는 2층으로 구분된다.
C2충:커다란 건물 유적. 흙벽돌로 된 두께 0.9-1.5 m의 방 하나가 완벽하게 발굴되었다. 크기는 3.6 X 6.3 m(22m2) 이다. 벽이 무너져내린 ㅎ벽돌(불에 탄 것이 아님), 1.2m의 쓰레기 더미에서 항아리와 병 둘과 다른 그릇들이 나왔다. 채색된 병은 제조에 있어서 페니키아 또는 싸이프러스 방식을 보여준다. 주전 10세기에 속한 것이다. 뜰과 화덕이 발견되었으며, 거위알(?), 강 매 의 밥통이 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이 건물의 붕괴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부서진 벽돌로 보아 지진에 의한 가능성이 짓다. 그 러나 다른 요인일 수도 있다.
C1층:붕괴 이후 건물울 보수하여 사용하였다. 어떤 벽은 옛것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 물론 새로 쌓은 것도 있다. 이 새 벽에서 는 돌 기초 없이 보다 얇은 벽돌을 사용하고 있다. 동쪽에는 긴 벽이 있고 서쪽에는 벽이 없다. 넓이는 7.4 X 7.9 m이다 중앙에 는 돌 포장길이 있다. C1층 말기에 무력에 의한 파괴 흔적이 발견되었다. 주전 10세기 말경이다.

지구물리학 탐사 방법이 도입되어 2주동안 실시하였다. 땅을 파지 않고 지하에 있는 구조물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큰 건물과 상 층부의 요새화 지역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자력 탐사는 불에 탄 흙벽돌 벽을 찾아내었다. 


2) 발굴 결과에 나타난 전망
1차 발굴의 결과 텔 르호브는 이스라엘 철기 I - IIA의 큰 유적의 하나임이 밝혀졌다. 그 이전의 주거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 지 않았다. D지역의 발굴은 주전 12-11세기에 주거지가 있었음을 밝혔다. C와 E지역의 발굴은 주전 10세기에 이 둔덕 전체에 대단위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 층의 불탄 흔적은 아마도 솔로몬 사후 5년 시삭의 침공으로 인한 것일 수도 있 다. 이 전란후 낮은 둔덕에는 더 이상 살지 않았고, 그후에는 높은 둔덕에만 사람들이 거주여 여러 변환기를 거쳐오다가 마침내 734-2BC에 앗수르에 의해서 파괴된다. 앗수르의 침공시 처참한 모습이 밝혀졌으며, 그후 잠시 앗수르가 지배하다가 오랫동안 사 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초기 이슬람 시대에 이 높은 둔덕에 다시 거주가 시작된다. 마멜룩 또는 오토만 터키 시대까지 계속된 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철기 시대 고고학의 중심 유적지가 될 것이다.

1999년에도 여러 곳에서 발굴이 진행된다. 텔 르호브(1999.6.6-7.2)를 비롯하여(19, 마사다(1998.12.27-99.1.5), 세포리(99.5.9 -6.9, 6.11-7.10) 등의 발굴이 진행되며 이 외에도 여러 지역과 유적지에서 발굴이 계속 행해진다. 최근 발달한 여러 방법들이 적용되어 보다 좋은 결과들이 기대된다.


나오며

최근에 고고학지에 게재된 '바바다의 이야기'(20에 나타난 대로 고고학의 유물 유적 발견과 발굴은 성서를 새롭게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성서 고고학은 "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의 역사적 배경을 유적과 유물의 고고학적 분석을 통하여 우리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함으로 성서를 좀더 종합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21 라는 정의에 따른다면 성지의 고고학 유적지들의 발굴 진전에 따라 성서의 배경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바르게 적용하는 데에 성서고 고학은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성서고고학은 성서를 보다 새롭게 접근하려는 한국교계의 열성에 든든하고 좋은 틀을 마련해줄 수 있으며, 성서의 새롭고 바른 이해에 크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성서고고학 발굴에 아직은 한국인들이 많이 참여 하고 있지 않으나, 앞으로는 좀 더 많은 관심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년 텔 르호브 발굴에 히브리대 학생과 한국신학계 교 수, 예루살렘대 성서고고학교수가 한국인으로 참여하고, 또는 슈퍼바이저로 활동하였다. 한국교계에 성서연구 바람이 불고 있는 데 이런 시점에서 성서고학의 연구자료를 활용하고 또는 성서지리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성서고고학, 성서지리학, 성서역사학은 함께 가는 학문인데, 어떤 면에서는 그 동안의 역사중심(이론 중심)에, 장소와 감각(고고학 발굴-만지는)을 통해 체득하는 새로 운 방법을 포괄시킨다면 한층 새로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구속사신학 일변도에서 구속장소학(지리학)(22을 포괄하는 쪽으로 나아가면, 한국신학의 새로운 전기가 들림 없이 마련될 것이다. 장소를 통해 역사적인 사건을 체험하는 데에 성서고고학은 일조를 할 것이며, 한국신학의 수립에 기여 할 것이다. 


1)http://www.imj.org.il/aechaeology
2)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New York, 1990, PP16-20
3) http://www.israel.org/archdigs.htmll
4) http://www.israntique.org.il/www-site/owa/ne.item?nid=503&lid=1
5) http:// " =460&lid=1
6) http:// /exhibit/warrior.html 
7) http://www.israntique.org.il/www-site/owa/ne.item?nid=440&lid=1
8) Ibid
9) nid= &lid=1
10) nid=401&lid=1/
11) nid=361&lid=1
12) http://diocaesaea.org/-private/Documents/tpblurb.html
13) Ibid
14) http://www.tau.ac.il/~archpubs/megiddo/index.html
15) http://www.colby.edu/rel/Anounce99.html
16) " Sep93-95.html
17) http://www.rehov.org/rehov/rep.html
18) Ibid
19) http://www.rehov.org./rehov/index.html
20) http://members.tripod.com/~kBible/
21)http:www.bamuseum.or.kr/
22) Pixner, Bagil; With Jesus through Galilee according to the fifth Gospel,corazim, Rosh Pina, 1992,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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