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히브리어로는 호세아로 '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헬라어로는 예수스이다. 가나안 정복에 관한 구약기사 가운데 나오는 주요인물이다. 여호수아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 장군으로 처음 나타나며, 이후에는 모세의 '종자(혹은 부관)'로서 회막안에서 그의 수종을 든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이전의 여호수아의 주요 공적은 에브라임 지파의 대표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찰하러 갔던 것이다. 갈렙과 함께 그는 그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리하여 그와 갈렙은 가나안땅에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다.
모세가 죽기전에 여호수아는 모세의 계승자로 위탁되었다.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은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던 것같이 여호수아에게 순종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지혜의 신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가나안 정복을 지도했는데, 그것은 여호수아서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즉, 여호수아의 행적에 대한 전승들은 수10:28-11:15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한 것이며, 24:1-28뒤에 깔려 있는 계약의 전승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이 행해진 때는 B.C 13세기 후반임이 강력하게 시사되고 있다. 이는 여호수아를 아마르나 문서와 동일한 인물로 보는 것을 배제한다. 또한 이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언어학적 근거에서도 부인해 왔던 것이다. 여호수아를 모세보다 앞선 아마르나 시대의 인물로 보는 견해는 지극히 불확실한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가나안에서 세겜에 있는 중부 가나안의 1개 부족, 혹은 여러부족들(이미 세겜 근처에 거주한 므낫세와 출애굽기에 나오는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었을 것이고, 평지에 있던 일군의 요새 성읍들을 정복했을 것이며 북방지역을 적어도 한 번쯤은 침략했을 것이다. 이후에 그는 딤낫 헤레스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110세에 죽어 장사 지내졌다.
오경속에서 여호수아의 존재는 2차적인 것이라고 주장되어왔다. 확실히 이것은 여호수아가 출현하는 몇 군대에도 해당된다. 제사문서 기자들은 몇 군대에다 여호수아를 삽입했다.(예: 민13:16에서 그의 이름을 변경한 것, 27:18-23에서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세우고 안수하여위탁시킨 것, 34:17에서 엘르아살과 함께 그로 하여금 땅을 나누도록 한 명령). 동시에 다른 기사들은 보다 진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를들면 민11:28에서 그의 동일성에 대한 보편적인 증명, 민14장의 정탐 이야기(원래 여기서는 갈렙 혼자만이라는 사실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여호수아를 회막과 연관시키는 전승등이다. 여호수아는 아마도 모세의 후계자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전승은 상당히 확대되어 왔다. 여호수아서에서 언급된 것을 몇 가지를 보면 그는 거의 제2의 모세이다. 야웨께서 모세에게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 함께 하시며, 사람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듯이 그에게 순종하고, 야웨가 기사를 행하시기에 앞서 모세가 이스라엘을 성결케 했던 것같이, 그도 야웨가 기사를 행하시기 전에 이스라엘을 성결케 한다. 또한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되었던 것처럼 온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된다.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넌 일은 홍해를 건넜던 것을 상기시켰다. 마치 야웨가 불타는 덤불 숲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여리고 앞에서 천사(한글 개역에는 '여호와의 군대장관')는 여호수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율법을 돌에 기록했던 것처럼 모세가 기록한 그 율법을 돌에 기록했다. 야웨는 모세의 말을 들으셨던 것같이 여호수아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마침내 여호수아가 계약의식을 위해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았을 때, 그는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하여 들려 주었다. 그런데 수24:2-7은 신1:6보다 훨씬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되긴 하지만, 아마도 신1:6-3:29을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여호수아는 왕이나 지도자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그는 '신(Spirit)'을 가진 자로 묘사되어 있으며, '여호와의 종'으로 불리어진다. 그는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함께 불러 모은다. 그의 이름은 호세아에서 여호수아로 바뀌어 불려지게 되는데, 이는 왕이 즉위식을 거행할 때 행해지던 일반적인 왕실관습을 상기시킨다. 그가 땅을 나눈 것은 왕이 행정구역을 설정한 것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는 청원에 대해 결정을 내려 주도록 부탁받는데, 이것 또한 왕에게 부여된 재판의 기능인 것이다. 제사장인 주석자는 여호수아 옆에 제사장 엘르아살을 동료로 설정함으로써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훗날 전설에는 여호수아의 자취가 약간 길게 늘여지게 되었다. 그는 '예언하는 일에 있어서 모세의 후계자'로 불리어졌다. 그가 토라를 이행할 때에 있어서의 경건함으로 말미암아 그는 '이스라엘의 재판관'이 되었고, 백성을 위한 중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여호수아는 모세로부터 토라를 받고 그것을 장로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토라는 언약궤속에 봉해져 있었다가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이 죽은 뒤 사독에 의해 공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