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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⑨헤롯과 예루살렘 3

입력 2014-03-14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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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⑨헤롯과 예루살렘 3 기사의 사진
성전 벽돌 최고 600t… 소가 끌어 옮길 수 있게 독특한 고안

성전 건축 


스룹바벨이 주전 516년 제2차 성전을 재건했지만 알렉산더, 프톨레미, 셀루시드의 헬라 시대를 거치면서 훼손되었다. 로마시대 유대 분봉 왕 헤롯은 주전 19년에 이 훼손된 성전을 복구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의 신임을 받지 못했던 헤롯에게 예루살렘 성전 복구 작업은 자신이 유대교 신앙을 갖추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성전과 성전산을 건축하기 위해 헤롯은 여러 독특한 방법을 동원했다. 먼저 성전이 있었던 언덕을 확장하면서 성전의 남쪽 다윗 성에서 올라오는 경사면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인공적으로 아치들을 세웠다.

헤롯의 건축에만 사용된 벽돌들을 살펴보면 구약시대 다듬은 돌 양식과 유사하지만 더 정교한 기술로 깎은 돌이 사용되었다. 베이지색 석회석을 깎아 만든 벽돌의 마감은 이전 시대에 사용된 벽돌과 확연히 다르다. 성전산에 사용된 벽돌은 직사각형으로 평균 70㎝ 길이에 28t 정도였지만 가장 큰 것은 13m 길이에 무게도 600t이나 되었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돌을 구하기 위해 헤롯은 예루살렘 남쪽 석회석 산지를 채석장으로 사용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이 지역이 한때 다윗 성의 일부분이었고 어쩌면 다윗과 유다 왕들의 무덤이 있었던 지역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헤롯의 벽돌은 가장자리를 끌로 5㎝ 정도 잘 깎아내고 위로 올라와 있는 부분들은 부드럽게 깎아 마감하였다. 지금처럼 벽돌과 벽돌 사이에 시멘트를 바르지 않았기에 벽돌을 정확하고 바르게 다듬는 것이 중요했다.

헤롯의 벽돌 중 시선을 끄는 것은 벽돌 중앙에 사각형으로 5㎝ 정도 튀어나와 있는 돌들이다. 반대로 사각형 구멍도 있다. 여기엔 나무막대를 꽂아 튀어나오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은 헤롯이 무거운 돌을 예루살렘 남쪽에서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 성전산까지 옮길 수 있었던 방법을 알려준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채석장에서 돌을 다듬고 나면 튀어나온 부분이나 막대를 꽂은 쪽에 줄을 매어 기중기로 들어올릴 수 있었다. 바닥에 나무들을 깔아 마치 바퀴처럼 사용하였는데, 그 위에 벽돌을 올렸다. 다시 이 튀어나온 부분에 줄을 매 소들이 끌게 하면 성전산까지 돌을 옮길 수 있었다. 성전산에 벽돌을 쌓고 나면 이 튀어나온 부분을 제거했는데, 일부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헤롯 성전 

성전산 위에 가장 중요하고 튼튼한 건물은 당연히 성전 그 자체였다. 헤롯의 성전은 현재 바위 돔(Dome of Rock)이라고 부르는 무슬림 성지에 있기 때문에 발굴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발굴이 된다고 한들 수천년 동안 여러 다른 문화의 지배를 받아온 장소라 신약시대 모습이 남아 있으리라는 기대는 대부분 하지 않는다. 다만 바위 돔 건물 안에 모하메드가 승천하면서 밟았다고 알려져 있는 바위는 언덕의 기초석으로 아마 헤롯의 성전도 이 위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다.

덕분에 우리는 성전의 모습을 재현할 때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남쪽 훌다 성문으로 성전산에 올라온다고 해서 누구나 성전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룩한 성전 안뜰은 오직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여인들은 안뜰에 머물러야 했다. 오직 남자들만 여인의 안뜰과 성전 안뜰 사이 니카노르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성전 안뜰에는 제단과 물두멍 그리고 제물을 묶어놓는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당시 안뜰로 들어왔을 때 제사에 참석한 유대인들의 눈을 부시게 한 것은 성전의 금장식이었을 것이다.

헤롯의 성전은 60×20규빗(1규빗은 약 50㎝)의 솔로몬 성전과 같은 크기로 지어졌다. 높이는 40규빗으로 2층 건물이었다. 측면에는 제사 용기와 제사장들이 사용했던 방들이 3층 규모로 마련되어 있었다. 방과 방은 계단과 문으로 연결되어 있어 이동이 자유로웠다. 성전 입구에는 포도넝쿨과 사람만한 포도송이를 금으로 만들어 장식하였다. 입구에는 또 솔로몬의 성전의 야긴과 보아스 두 개의 기둥 대신 네 개의 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는 고린도 양식으로 금장식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독립적인 기둥이 아니라 건물에 반원 형태로 붙어 있는 기둥이었다. 성전 벽 전체를 이러한 기둥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성전 입구 모습은 성전이 무너진 후 유대인들에게 분명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주후 132년 유대인들의 독립운동 당시 바르코크바 동전이 주조되었는데, 동전에는 네 개의 기둥이 있는 성전 입구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전 내부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자색 청색 홍색으로 수놓은 휘장(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당연히 제사장들 중 당일의 순서를 맡은 이들이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이 휘장이 찢어졌다고 말하고 있다(눅 23:45).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는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도 있었던 진설병상이 북쪽에, 메노라(일곱 가지의 등잔대)가 남쪽에 놓여 있었다. 헤롯성전의 메노라는 예루살렘을 파괴한 로마 장군 디도(Titus)가 전리품으로 챙겼다. 로마의 디도 개선문에 그 장면이 그려져 있다. 지성소 내부는 헤롯 당시에도 비어 있었다. 구약시대 솔로몬의 성전에는 그룹이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언약궤가 있었지만, 바벨론의 침략으로 파괴되면서 언약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때문에 디도의 전리품 중에는 언약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토니아 요새 

성전산은 당연히 유대인에게 축제의 장소이자 회합의 장소였다. 이방인은 들어올 수 없는 거룩한 장소였으며 자신들만의 제사를 드리면서 연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로마는 성전산에 모이는 유대인들을 감시해야만 했다. 헤롯은 성전산 일부분을 로마군의 진영으로 할애했다. 성전산 북동쪽 한켠에 자리 잡은 로마군의 요새는 한때 헤롯의 후원자였으며 로마의 삼두정치 당시 우두머리 중 하나였던 안토니우스의 이름을 따라 안토니아 요새라 불렸다.

이 요새 역시 그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현재 이 안토니아 요새 자리에는 아랍의 초등학교가 세워져 있어 발굴은 불가능하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네 개의 탑이 성전산 각 구석에 세워져 있었는데 3개의 탑은 높이가 50규빗이었으나 남동쪽에 세워진 탑은 70규빗으로 가장 높아 성전 안을 감시하기에 좋았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더구나 유월절은 가장 중요한 명절로 제사를 지낸다는 명목 아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였다. 로마군은 이때 성전에 모인 유대인들의 정치적 동향을 살펴야만 했을 것이다. 가이사랴에서 주로 거주했던 로마의 총독은 명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헤롯의 궁전에서 머물기도 했지만 안토니아 요새에 머물면서 유대인들을 살피는 것은 그들의 의무 중 하나였다. 학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당시 로마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주후 26∼36년)는 안토니아 요새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안토니아 요새 자리 북쪽에는 현재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교회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하고 옷 벗김의 수모를 당했던 장소로 생각되는 기념교회 지하 바닥에서 오래된 로마의 돌로 포장한 도로와 로마 군사들이 즐겨했던 장기 게임판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도로는 주후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예수님 당시와는 무관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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