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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⑬예루살렘의 흥망 2

입력 2014-04-1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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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⑬예루살렘의 흥망 2 기사의 사진

수없이 ‘주인’ 바뀌며 흥망 거듭… 이젠 인류의 순례 장소로

로마의 손에 무너지다

헤롯 집안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멸망할 때까지 유대인의 왕으로 군림했다. 사도행전 25장에 기록된 바울의 가이사랴 재판을 맡은 이는 헤롯 아그립바 2세로 주후 48년 예루살렘 분봉 왕이 되었다. 바로 이 아그립바 2세가 헤롯 대왕이 시작한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을 완성한 인물이다.

로마에서 성장한 아그립바 2세는 헤롯 집안의 어느 왕보다 더 로마를 사랑했다. 그는 유대인보다는 로마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결국 유대인들은 아그립바 2세와 로마의 통치에 반란을 일으켰다. 소위 제1차 유대반란(the Great Revolt)이다.

주후 66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5년 만인 주후 70년 로마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디도(혹은 티투스)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으로 마무리됐다. 예루살렘 도시 전체가 화염으로 가득했다. 요세푸스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몰살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여기가 사람이 살았던 장소였을까 의심이 들 정도로 도시의 기초까지 뿌리 뽑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졌던 성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현재까지 이슬람의 황금 돔을 지붕으로 하고 있는 ‘바위 돔’이 서 있다.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은 이 모스크가 세워져 있는 성전산에는 올라갈 수도 없다. 물론 옛 성전의 자취를 찾아볼 수도 없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 것이며(마 24:2; 눅 21:6; 막 13:2) 황폐하여 버려지리라고 예언하셨다(마 23: 37-39; 눅 13: 34-35). 예수의 예언처럼 성전은 무너졌고 버려졌다. 단지 성전 벽의 일부분이 땅 위에 드러나 있어 유대인들과 순례객들은 이곳에서 슬피 울며 성전을 기억했다.

1838년 미국인 탐험가 에드워드 로빈슨은 예루살렘 성전 잔해인 서쪽 벽의 남쪽 끝 부분에서 과거 성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했다. 성전과 도시를 연결했던 다리의 아치 부분이었다. 이 아치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로빈슨 아치’라고 명명했다. 1968년부터 1977년까지 또 1993년부터 1997년까지 고고학자들은 로빈슨 아치 아래 지역을 대대적으로 발굴했다. 발굴단은 헤롯의 성전산 서쪽 벽을 찾아냈다.

서쪽 벽을 따라 만들어진 10m 너비의 도로도 발견됐다. 지금까지 발굴된 도로 전체 길이는 70m이다. 이 도로는 가로 3m, 세로 1.5m의 두꺼운 판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도로 아래로는 마치 현대의 도로와 같이 하수구가 만들어져 있었다.

도로 서쪽에는 상점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도로와 상점이 있던 지점에서 주후 1세기에 사용된 수백 개의 동전과 저울추도 발견됐다. 이 발굴 현장은 현재 ‘서쪽 벽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원이 성전에서 떨어진 벽돌들을 무너져 있는 모습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발굴된 유적지마다 과거의 모습을 가장 가깝게 재현하여 순례객들에게 보여주는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유적지와는 차이가 있다. 이곳을 발굴한 로니 라이흐 교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성전이 어떻게 모욕을 당했는지 현대의 유대인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무너진 벽돌을 그대로 전시한다고 밝혔다.

성전이 불에 타면서 이곳을 장식했던 금이 녹아 벽돌 틈 사이로 흘러들어갔다. 로마 군사들은 이 금을 캐내기 위해 벽돌을 산산이 깨뜨렸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로마 군사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전리품들을 챙겼다.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옆에 세워져 있는 디도의 개선문에서 우리는 이 전리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치 형태의 개선문 안쪽에는 디도의 승전 소식들을 부조로 조각해 놓았다. 이 부조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군사들이 짊어지고 있는 메노라 즉 성전에 있었던 여섯 개의 등대다. 더불어 성전에서 사용했던 나팔과 진설병상도 함께 로마로 옮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조각 덕분에 우리는 신약시대 성전의 기물들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로마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

주후 130∼131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온전히 로마의 땅이 되어버린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이름을 바꾸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이름인 엘리우스를 사용하여 주피터 신에게 바치는 엘리우스의 도시라는 뜻으로 ‘엘리아 카피톨리나’라 불렀다. 무너진 예루살렘에 전형적인 로마의 도시가 건설되었다.

현재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북쪽에 난 문은 1537∼1541년 사이 터키의 슐리만 대제가 세운 것으로 다메섹 문 혹은 세겜 문이라 불린다. 1979∼1984년 이 성문의 아래에서 오래된 고대 성문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 문은 엘리아 카피톨리나의 북쪽 성문으로 3개의 아치 형태로 이뤄졌다. 성문을 통과해 도시로 들어오면 반원형 광장이 있다.

이 광장 한가운데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도시들이 흔히 그랬던 것처럼 엘리아 카피톨리나에는 북쪽에서 남쪽을 횡단하는 도로(카르도·Cardo)가 있었다. 너비가 22.5m나 되는 카르도 양쪽에는 기둥들이 세워져 있고, 기둥 사이로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주후 6세기 유적인 요르단의 마다바 교회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예루살렘이 그려져 있는데 북쪽의 성문과 광장, 그리고 카르도의 모습이 남겨져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주피터 신전을 세웠다. 예루살렘을 떠나서도 여전히 독립을 갈망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집을 모독한 이 행위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2차 유대반란이 일어났다. 주후 132∼135년 바르 코크바를 중심으로 봉기한 유대인들은 로마를 또 한 번 자극하였으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대 지역의 이름마저 바꿔버렸다. 블레셋 평원의 로마 이름인 필리스티야/팔레스티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현재 이스라엘 땅을 부르는 영어 이름인 팔레스타인(Palestine)은 바로 이 로마 이름에서 기원한다.

유대인의 독립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유대인들은 물론 기독교인들도 예루살렘 방문이 금지됐다. 1년에 단 한 차례, 바벨론이 솔로몬의 성전을 무너뜨린 날이면서 동시에 로마가 헤롯의 성전을 허문 날인 ‘티샤 베아브’(아브월 아홉 번째 날)라 불리는 이 날에만 예루살렘 성전산의 서쪽 벽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현재도 무슬림의 차지가 된 성전산에 올라갈 수 없는 처지가 된 유대인들은 그나마 성전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이 서쪽 벽에 모인다. 유대인들은 이곳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며 미래의 성전을 위해 기도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헤롯이 사용한 독특한 벽돌로 쌓은 성전산 벽의 일부분을 볼 수 있다.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주후 325년 로마가 기독교를 공식화하면서 비로소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무덤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이제 이스라엘은 기독교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비잔틴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장소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예루살렘을 다룬 지난 글들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잔틴 시대 교회의 흔적은 최근의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바 있다.

638년 예루살렘은 무슬림 아랍인들이 점령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바치려고 했던 아들이 이스마엘이라고 믿는 무슬림에게도 예루살렘은 거룩한 땅이었다. 성전이 있던 자리에 모리아 산을 기념하는 ‘바위 돔’이 세워진 것도 이때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다시 차지했지만 성전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무슬림까지 세 종교의 성지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인류의 순례 장소가 되었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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