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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⑥하스모니아 왕조

입력 2014-02-21 01:36 수정 2014-02-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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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으로 읽는 성서-(2)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 ⑥하스모니아 왕조 기사의 사진
예루살렘 탈환 후 정결례… 하루치 거룩한 기름이 8일간 성전 밝혀

헬라화된 유다 


가톨릭 외경 특히 마카비서는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 즉 헬라시대의 역사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외경이 정경에 속해 있지 않아 이 시대사를 아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이야기할 때 이 시대를 다루지 않으면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 중간사를 알면 신약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지역을 정복했을 때 예루살렘도 점령지 중 하나였다. 10년도 안 돼 자식 없이 죽은 그의 영토를 장관들이 나눠 가지면서 프톨레미와 셀루시드 왕조가 탄생했다. 처음 프톨레미의 통치를 받을 때 유다인은 아람어로 유다라는 뜻을 가진 예후드(YHDH)가 기록된 동전을 사용했고, 제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자치구역을 갖고 있었다. 이때부터 유다에는 이미 헬라문명의 영향이 짙었다. 헬라문명의 영향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전 이스라엘에 퍼져나갔다.

주전 198년 셀루시드의 안티오쿠스 3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헬라문명을 따르는 유다인들이 늘어났다. 셀루시드는 헬라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전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헬라의 엘리트 계층이 되려 하는 제사장들과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은 유대교 정신을 배반했다. 형상을 새기지 말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의 집안과 무덤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들로 장식됐다. 헬라의 언어와 관습을 흉내 내면서 부와 권력을 더욱 축적했다.

대제사장 중 야손(Yason)의 경우 예루살렘을 헬라 도시로 만들기 위해 ‘김나지움(그리스의 운동연습장)’이나 ‘극장’ 같은 유대교와 거리가 먼 시설들을 세우려 했다. 이스라엘의 주전 1세기∼주후 1세기 역사를 기록한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루살렘에는 당시 김나지움과 극장이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현대의 예루살렘은 고대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여서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직 이 건물들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야손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발견돼 적어도 그가 역사적 존재임은 증명됐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율법(레 11:1∼47)을 가진 이스라엘에서 사람의 시체를 가까이 두는 것은 부정한 것이었다. 결국 시신은 성 안이 아닌 성 밖 무덤에 묻혔다. 덕분에 예루살렘 성 안의 고대 모습은 잘 보존되지 못한 데 반해 성 밖 묘지들은 우연한 발견이나 발굴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

야손의 무덤은 현재 라하비야라 불리는 예루살렘 북서쪽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 시대 무덤은 석회석 산지를 깎아 만든 것으로 포도와 꽃 등을 입구에 조각했다. 입구는 돌로 막았으며 안에는 여러 구의 시체를 누이는 장소가 마련됐다. 유다인들은 주로 가족묘를 사용했는데 시신이 썩고 1년이 지나면 뼈들을 모아 40∼60㎝ 길이의 돌을 깎아 만든 유골함에 담아 재매장하는 관습이 있었다. 유골함에는 뼈의 주인 이름이 기록되기도 했다.

성전 봉헌 

유다의 제사장들 중에는 여전히 보수적인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우상 숭배를 거절하고 성전의 제물을 셀루시드 왕조에게 보내지 않았다. 주전 167년 안티오쿠스 4세는 유다인들이 그들 자신만의 제사를 드리고 안식일과 절기 같은 전통을 지키는 것을 금지했다. 할례를 행하는 유다인은 아이는 물론 가족까지 모두 죽여 버렸다. 안티오쿠스 4세는 성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우고 돼지를 희생 제물로 바치라고 명했다. 레위기의 율법에 의하면 유다인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이기에 이는 너무나 모욕적인 행위였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 서쪽의 모딘이라 불리는 보수적 제사장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제사장 마티티아스와 다섯 아들은 셀루시드 왕조에게 반기를 들었다. 전쟁 초기 1년 동안 그들은 헬라화된 유다인들을 살해하고 유다의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했다.

주전 166년 마티티아스가 죽었고 아들 유다는 자신과 형제들을 히브리어로 망치라는 뜻을 가진 ‘마카비’라 불렀다. 그들은 셀루시드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했다. 형제들 중 요나단 마카비가 대제사장이 되어 성전에서 유다의 제사를 거행하고 정결례를 시도했다. 부정한 것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기 위해 그들은 먼저 제사장의 축복을 받은, 가장 처음 짜 순수함을 간직한 거룩한 기름이 있어야만 했다. 거룩한 기름은 병에 담아 봉인했다. 유대교 전통에 의하면 당시 성전 안에는 이 조건에 맞는 기름이 아주 적은 양만 있었다고 한다. 이 양을 가지고는 단 하루밖에 성전의 메노라(여섯 가지 등대)를 밝힐 수 없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 하루치의 기름은 8일 동안 성전을 밝혀 줬고 덕분에 거룩한 기름을 새롭게 만드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 하누카(‘성전을 봉헌하다’라는 의미)라는 명절로 8일 동안 빛을 밝히고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은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성경은 이 명절을 수전절이라 번역했으며 예수께서도 수전절을 기념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일이 있다(요10:22).

하스모니아 왕조 

셀루시드와의 대립은 계속됐지만 유다의 거주지들을 빼앗고 헬라화된 유다인들은 다시 유대교로 개종했다. 전쟁과 암살 등으로 마카비 형제들 안에서 우두머리는 여러 번 바뀌었다. 형제들 중 막내인 시몬 마카비는 주전 142년 대제사장이요, 군사들의 최고 장관이요,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추대됐다. 하스모니아 왕조의 시작이었다. 하스모니아 왕조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을 떠났던 유다인들이 돌아오면서 예루살렘의 인구는 배로 늘어났다. 다양한 장소에서 돌아온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면서 예루살렘 안에는 종교적 색깔을 달리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약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 종파들은 바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이다. 사두개는 예루살렘의 상류층을 구성하는 이들로 헬라 문명을 받아들였던 제사장들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그들은 성전의 정결과 제사에 관심을 가졌다. 바리새는 학자들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주력했다.

종교적 발전뿐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발전도 더해졌다. 도시는 확장됐고 성벽이 세워졌으며 건물들은 늘어났다. 마카비서 10장 10∼11절에 의하면 요나단 마카비는 예루살렘 성벽을 더 강화하기 위해 네모로 각 지게 깎은 돌로 성벽을 보수했다. 그의 작업은 막내 동생 시몬 마카비에 의해 완성돼 예루살렘 사면이 모두 벽으로 둘러싸이게 됐다(마카비 13:10).

고고학자들은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에 세운 성벽들을 예루살렘 곳곳에서 발견했다. 예루살렘 구시가지 욥바 성문 옆 다윗 탑이라고 불리는 곳과 최근 이 탑 아래 고가도로 밑에서 발견된 ‘마밀라’라 불리는 지역에서 하스모니아 왕조 시대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 동쪽 벽은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운 벽으로 헤롯 시대에 확장된 이음선을 볼 수 있다. 하스모니아 왕조 성벽의 벽돌은 헤롯 시대 벽돌보다 돋음 새김이 더 튀어나와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하스모니아 왕조가 유대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시작됐음에도 점차 헬라화됐다는 것이다. 자녀들 이름 중에 알렉산더 같은 헬라 이름이 사용되고 의복이나 건축 역시 헬라의 영향을 받았다. 하스모니아 왕조는 주전 63년 로마의 폼페이가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까지 지속됐다. 주전 37년 로마의 분봉왕 헤롯이 오르면서 유다의 제사장을 중심으로 하는 왕조는 사라지고 말았다.

공동 집필

임미영 박사


<평촌이레교회 협동목사·서울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장신대학교 강사>

김진산 박사

<터치바이블 대표·서울신학대학교 한세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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