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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장균으로 휘발유 뽑고 색소 만들어..석유시대 끝날 것"

최준호 입력 2021. 06. 25. 11:00 
 

미생물 대사회로 인위적으로 바꿔
화학연료 만드는 탄소중립 기술
대장균이 생산하는 다양한 색소
약물로도 사용돼 건강 우려 없어
30년 뒤엔 바이오 화학이 주도
특별한 경우만 석유 화학 쓸 것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의 [첨단의 끝을 찾아서]

이상엽 교수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학자다. 미국 국립과학원과 미국공학한림원, 영국 왕립학회 외국회원에 함께 오른 한국 학자는 이 교수가 유일하다. 사진은 시스템대사공학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색 색소를 들고 있는 이 교수. 2014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세계 최고 응용생명과학자 20인’ 선정에 선정되기도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상엽 교수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학자다. 미국 국립과학원과 미국공학한림원, 영국 왕립학회 외국회원에 함께 오른 한국 학자는 이 교수가 유일하다. 사진은 시스템대사공학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색 색소를 들고 있는 이 교수. 2014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세계 최고 응용생명과학자 20인’ 선정에 선정되기도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시스템대사공학의 선구자 이상엽 KAIST 교수
석유 고갈의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석유는 여전히 넘쳐나는데, 석유를 버려야할 판이다. ‘탄소중립’(Netzero)이란 새로운 단어가 태어났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탄소의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21세기 지구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CO₂) 농도는 인류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땅속에서 캐내고 뽑아낸 석탄·석유·천연가스가 주원인이다.

20여 년 전 교토의정서(1997년)를 채택할 때만 하더라도 기후변화 문제는 미래에 대한 우려와 준비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9년 여름 서유럽을 휩쓴 기상관측 사상 최고 폭염, 2020년 1월 폭염과 함께 호주대륙 숲의 20%를 태워 버린 산불의 원인이 ‘탄소’다.

올여름 폭서의 경고는 북미대륙에서부터 들린다. 미국 서부는 여름의 초입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섭씨 40도를 넘나든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2050년에는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장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휘발유를 만들어낸 이상엽 교수의 논문을 실은 2013년 10월호 네이처 표지

대장균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휘발유를 만들어낸 이상엽 교수의 논문을 실은 2013년 10월호 네이처 표지



석유중독에서 벗어나는 길
하지만, 인류가 ‘석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에너지도 문제지만 ‘플라스틱 중독’은 더 심각하다. 마스크에서부터 일회용 배달식기까지, 옷이나 신발에서 자동차 부품까지, 심지어는 플라스틱을 넘어 향수나 인공색소까지…. 석유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해결책이 없을까. 태양광·풍력·원자력 등 탄소와 무관한 대안이 이미 등장하고 있는 에너지는 그래도 터널의 끝이 보인다. 플라스틱, 또는 석유화학제품의 대안은 뭘까. 이쯤에서 등장하는 대안 중 하나가 ‘시스템대사공학’(System Metabolic Engineering)이다. 이걸 이용하면, 땅에서 탄소를 끄집어내지 않아도 에너지와 플라스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말 그대로 ‘탄소중립’기술이다. 이상엽(57)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겸 연구부총장은 시스템대사공학의 세계적 선두에 선 학자다. 지난 18일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Q : 시스템대사공학이 뭔가.
A : 우선 대사공학부터 얘기하자. 특정한 목적을 갖고 생명체의 대사회로를 인위적으로 고쳐서 그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대사공학이라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살아 있는 미생물을 공학적으로 이용해 목적한 특정 물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이제 시스템대사공학을 얘기하겠다. 대사공학을 할 때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미생물을 이용하는데, 이게 워낙 복잡하다. 한두 개의 유전자를 바꾸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전체적으로 예측하고, 디자인한 뒤 대사공학을 진행해야 성공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러려면 합성생물학과 시스템생물학·진화공학 등 여러 학문이 통합돼야 한다. 시스템공학에서는 이런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컴퓨터 가상세포 시뮬레이션을 통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사공학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다.
(그는 2000년 시스템대사공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낸 학자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16년 시스템대사공학을 ‘10대 떠오르는 기술’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상엽 교수가 미생물로부터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경로를 세계 최초로 총 정리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상엽 교수가 미생물로부터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경로를 세계 최초로 총 정리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를 설명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석유로 만든 화학물질은 모두 바이오로

Q : 실제 사례를 들자면.

A : 미생물, 특히 대장균을 이용해 휘발유와 디젤, 알코올과 같은 연료는 물론 플라스틱, 산업용매 등 다양한 화학원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숙신산의 경우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쓰임새가 굉장히 많은 원료다. 지금은 석유화학으로 큰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바이오화학을 통한 숙신산 생산에 뛰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조만간 석유고갈시대가 오기도 전에 탄소중립을 위해서라도 숙신산과 같은 바이오 기반 친환경 화학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세계 화학시장 규모는 연간 5000조원이 넘는다. 그 대부분이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이걸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시스템대사공학이다.
(이 교수는 2013년 10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세계 최초로 대장균을 이용해 휘발유를 만들어 내는 연구결과를 표지논문으로 실었다. 당시 네이처 표지엔 대장균 속에 석유 시추기와 정유 파이프들을 그려 놓고 ‘FUEL CELLS’란 제목을 붙여 놓았다. 퓨얼셀의 사전적 뜻은 ‘연료전지’이지만, 네이처는 ‘세포로 연료를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이 교수 논문의 의미를 압축했다.)

Q : 최근에는 대장균을 이용해 총천연색 색소들을 만들었는데.
A : 그렇다. 지금까지 식품이나 화장품에 쓰는 각종 색소는 대부분 석유화합물에서 뽑아내는 거다. 우리는 그걸 먹고, 바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연구팀은 미생물을 이용해 카로티노이드계 색소 3종과 비올라세인 유도체 계열의 색소 4종을 만들었다. 카로티노이드 계열 색소인 아스타잔틴은 빨강, 베타-카로틴은 주황, 제아잔틴은 노란색이다. 비올라세인 유도체 계열 색소인 프로비올라세인은 초록을, 프로디옥시비올라세인은 파랑을, 비올라세인은 남색을, 디옥시비올라세인은 보라색이다. 포도당이나 글리세롤을 먹여 배양한 대장균이 생산하는 색소는 친환경적이며, 약물로도 사용되는 만큼 건강에 대한 우려도 해소할 수 있다.

이상엽 교수가 실험실 배양기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상엽 교수가 실험실 배양기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섰다. 프리랜서 김성태



상용화 목전에 둔 시스템 대사공학

Q : 여러 미생물 중 왜 하필 대장균인가.
A : 대장균은 미생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가장 많이 연구를 해 온 대상이다. 가장 많이 알고, 조작할 수 있는 도구도 많다. 대장균은 성장속도도 빠르다. 흔히 식중독을 얘기할 때 대장균이 많이 거론돼 위험하게 생각하는데, 독성이 있는 대장균 종류는 극히 일부다. 대장균이라 이름 지어진 이유가 우리 몸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장내 세균이기 때문이다. 대장균은 나쁜 세균의 침입을 막고, 소화되고 남은 음식 찌꺼기를 분해해 준다. 대장균을 대상으로 시스템대사공학을 적용하면 안전하고도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Q : 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를 할 텐데.
A : 시스템대사공학은 내가 창시했지만, 이젠 다들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전쟁 같은 연구를 하고 있다. 결국 아이디어 싸움이다. 시스템대사공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경쟁 그룹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그레고리 스테파노폴러스 교수 연구팀, UC버클리의 J 키슬링 교수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우리보다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

Q : 언제 상용화될까.
A : 이제 슬슬 조금씩 되는 거 같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도 내 제자 3명이 들어간 GS칼텍스는 바이오 공정을 이용해 2,3-부탄디올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2,3-부탄디올은 자연에서 작물을 보호하고 토양의 산성을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천연물질로, 그동안 일반적인 화학 공정으로는 생산이 어려웠던 물질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시스템 대사공학과 관련한 다양한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상엽 교수가 개발ㆍ완성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사진 KAIST]

이상엽 교수가 개발ㆍ완성한 바이오 기반 화학물질 합성지도. 국제학술지 네이처 카탈리시스에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사진 KAIST]



바이오화학은 선택 아닌 필수

Q : 시스템대사공학의 10년, 20년, 30년 뒤 미래는.
A : 10년 뒤쯤이면 이미 20~30년 뒤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발전해 있을 거 같다. 우리가 하는 많은 방법과 디자인 전략 중 상당수가 컴퓨터 쪽으로 많이 옮길 것이고, 지금 우리 학생들이 밤을 새서 유전자를 잘라 붙이고 하는 작업을 로봇이 대체할 거다. 투자 규모가 다른 미국에서는 이미 몇 개 기업이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10년 뒤엔 일부 석유화학 대체물질 공장이 세워져 바이오 공정으로 생산되고 실생활에 쓰이고 있을 것이다. 20년 뒤엔 바이오화학공장은 더 많아지고, 이런 제품은 더 범용화할 거다. 30년이 되면? 그전까지는 다른 선택이 있었다면, 이때는 바이오화학이 주가 되고,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석유화학을 쓰는 시대가 되어 있을 거다. 이때가 세계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2050년이기도 하다. 바이오화학산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의 시대가 올 것이다.

Q : 시스템대사공학 연구의 끝은 무엇일까.
A : 없다. 생물체를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시점은 없다. 공학이란 것 자체가 ‘알고 있는 것을 사용하는 것’(use what you know)이란 뜻이다. 시스템대사공학은 앞으로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2050년쯤 학문과 산업이 어우러지면서 정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지만, 그 응용은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늘어날 것이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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