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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네다리 잃은 염소 '안나'가 걷는다..9·11 겪은 소방관의 기적

임선영 입력 2020.08.22. 05:01 수정 2020.08.22. 07:03 
 

애니 '겨울왕국' 안나서 이름 따와
9·11 테러 현장서 동료 10명 잃고
귀농한 전직 뉴욕 소방관이 입양
코끼리 의족 전문가가 의족 제작
안나, 이젠 엄마 잃은 세쌍둥이 돌봐

미국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 농장에 사는 염소 안나. 동상으로 네 다리를 잃었지만 9·11 테러로 동료를 잃은 전직 소방관 가족에게 입양된 후 의족을 얻어 걸을 수 있게 됐다. [트위터 캡처]

미국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 농장에 사는 염소 안나. 동상으로 네 다리를 잃었지만 9·11 테러로 동료를 잃은 전직 소방관 가족에게 입양된 후 의족을 얻어 걸을 수 있게 됐다. [트위터 캡처]


이 염소의 이름은 ‘안나’다.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차가운 눈보라를 헤치며 언니 엘사를 만나고, 사랑도 찾은 씩씩한 공주 ‘안나’에서 이름을 따왔다.

염소 안나 역시 우여곡절이 많았다. 안나는 2015년 미국 북동부 지역에 기록적인 추위가 찾아왔을 때 세상에 나왔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나는 극심한 동상에 걸렸다.

뒷다리를 모두 잃고, 앞다리도 상당 부분 잃게 됐다. 꽁꽁 언 다리를 아무도 치료하거나 수술해주지 않아서였다. 안나는 온 힘을 다해 얼마 남지 않은 앞다리를 꿇은 채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전 주인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염소 안나가 의족을 착용하고 걷고 있다. [유튜브 캡처]

염소 안나가 의족을 착용하고 걷고 있다. [유튜브 캡처]


하지만 안나는 이제 ‘네 다리’로 자유롭게 걷는다. 게다가 자신을 아껴주는 새로운 가족도 있다. 안나에겐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네 다리를 잃은 염소 안나가 다리와 가족을 얻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해 11월 전 주인은 안나를 입양 보내고 싶어 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수의사는 이 소식을 듣고 한 가정을 떠올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안나를 잘 돌봐줄 수 있는 유일한 가정이었다.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에 사는 유어스 부부. 수의사로부터 “다리를 잃은 염소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부부는 안나를 본 적도 없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의족을 착용한 채 걷는 염소 안나 뒤를 안나를 입양한 미셸 유어스(왼쪽)와 레니 유어스가 따라오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의족을 착용한 채 걷는 염소 안나 뒤를 안나를 입양한 미셸 유어스(왼쪽)와 레니 유어스가 따라오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안나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에서 먹이를 먹고 건초 위에 누워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 보니 살도 너무 많이 쪄 있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숨도 가빠했다. 아내인 미셸 유어스는 “안나는 사람이 팔꿈치로 걷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거다”고 말했다.

처음 유어스 부부의 농장에 왔을 때 안나는 아무런 의욕이 없어 보였다. 사람이 다가가면 피하고 도망갔다. 하지만 유어스 부부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 레니 유어스는 과거 뉴욕시의 소방관으로 일했다. 그는 근무 비번이던 2001년 9월 11일 뇌 질환을 앓고 있던 딸의 병원 진료를 받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이 병원 TV 앞으로 모여 들었다. TV에선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WTC)에 충돌하는 9·11테러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소방서로부터 긴급 지원 요청을 받고 아비규환이 된 현장에 출동했다. 그런데 구조 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동료 10명을 잃었다. 레니는 “실제 현장은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참혹했다”고 회상했다.

테러와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트라우마를 겪던 그는 10년 후 심장마비가 발생해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이 일을 계기로 유어스 부부는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결심했다. 2010년 네 자녀, 미셸의 부모님과 함께 해리스버그의 농장으로 이사했다.

의족을 착용한 염소 안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의족을 착용한 염소 안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유튜브 캡처]


그 후 유어스 부부는 식용으로 팔릴 처지에 놓인 동물들을 농장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먹거나 팔기 위해서가 아닌, 반려동물처럼 키우기 위해서였다. 곧 부부의 농장은 닭과 염소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그러다 만난 염소가 바로 안나였다.

부부는 안나에게 다가가 쓰다듬으며 사랑을 줬고 결국 안나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연 안나를 이젠 걷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나를 병원에 데려가 엑스레이를 찍는 등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앞다리마저 계속 꿇고 있다 보니 힘줄이 굳어져 펼 수 없는 상태란 진단을 받았다. 안나가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네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는 것뿐이었다.

부부는 안나의 의족을 맞추기 위해 동물 의료기기 업체 3곳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반려견 의족만 대상으로 한다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부부는 포기하지 않고 유명한 동물 의족 제작 전문가인 데릭 캄파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다리를 잃은 코끼리에게도 의족을 맞춰준 적이 있었다.

안나가 엄마를 잃은 염소 세쌍둥이를 돌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안나가 엄마를 잃은 염소 세쌍둥이를 돌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안나와 레니 유어스(안나를 안고 있는 사람), 그의 아내 미셸 유어스가 안나가 돌보는 염소 세쌍둥이를 바라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안나와 레니 유어스(안나를 안고 있는 사람), 그의 아내 미셸 유어스가 안나가 돌보는 염소 세쌍둥이를 바라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세 차례의 맞춤 작업 후 안나는 의족을 얻었다. 마침내 네 발로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 체중도 54kg이나 감량했다.

안나는 최근 세 자녀를 ‘입양’해 내리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태어난 지 6주 만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세쌍둥이 염소의 엄마가 되어 준 것이다. 한 헛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세쌍둥이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다. 세쌍둥이는 안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잠도 안나 옆에서 잔다. 다른 동물들이 세쌍둥이에게 다가만 와도 안나는 소리를 내며 세쌍둥이를 지킨다.

안나는 유어스 가족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미셸은 “안나는 정말 귀엽다. 염소는 정말 똑똑하고, 반려견처럼 사람의 관심을 받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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