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다음에 들려오는 화음
  잭 로저스의『예수, 성경, 동성애』한국기독교연구소


 

7월! 6월이 지나 
일상이 달구어지는 걸 보니 휴가철이다. 무덥고 어수선한데도 기어코 휴가는 이때 가야 제맛이다. 하지만 올여름 바쁘고 숨차서 떠날 여유가 없을 듯하다. 자동차, 비행기를 타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내 방식대로 진종일 늘어질 대로 놀다오고 싶은데…. 아쉽다. 그래도 가고 싶다. 내가 누군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다. 은밀하게 조금은 생소한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며칠 지내다 돌아오고 싶다. 
그러다 잭 로저스(Jack Rogers)의 『예수, 성경, 동성애』라는 휴가 상품을 만나게 되었다. 망설임과 두려움이 앞선다. 익숙하고 주어진 것, 안전한 곳에서 멀어지려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왠지 낯설고 외딴 곳이라는 흥분에 이제 용기를 내어본다. 분명 이 여행길에서 삶의 저항과 불편, 그리고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서 몽롱한 기대는 접고 짐은 줄이되, 눈은 크게 뜨고 정신 추슬러 떠나볼까 한다. 『예수, 성경, 동성애』. 한국교회에서 앞의 두 단어는 전혀 생소하지 않다. 이에 반해 ‘동성애’는 생소하고 잘 알지 못하는 단어이다.(저자의 표현을 따라 ‘동성애’로 통일한다.) 

낯섦 속에서
일반적으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층적인 관점들이 산재해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첫째, 동성애 자체를 금기시하는 입장이다. 동성애는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결혼과 가족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반(反)사회적 세계관이라고 간주한다. 따라서 동성애는 격리와 훈계, 그리고 제재가 가능하다. 이 같은 입장에서 동성애를 병리적으로 담론화할 수 있으며 낙인찍기의 심각성에까지 이를 수 있게 된다. 
둘째,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지만 동성애 자체는 여전히 죄로 인식하는 시선이다. 즉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외침과 유사하다. 동성애자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그들의 변화를 도와주자는 입장이다. 즉 포섭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을 환영하지만 모든 것을 다 긍정하지 않고 계도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셋째, 동성애를 이성애와 동등하게 바라보는 입장이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노력이 담겨 있다. 동성애는 결코 정죄의 개념이 아니라 이성애자와 같이 동등한 존재이기에 그들의 성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건강한 동성관계를 유지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정당화하려는 활동가들이나 동성애자들 스스로 억압에 대항하여 얻은 입장이다. 
동성애의 원인과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인생의 수만큼 많고 사회, 문화, 의학적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고민할 것도 없이 대부분 첫 번째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간혹 두 번째 입장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잭 로저스의 관점은 이런 현실 속에서 남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동성애가 아직 익숙한 주제가 아니고, 이에 대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국교회를 염두에 두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동성애 논쟁은 모든 경계선을 넘어서며 사회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그러기에 이 문제는 쉽게 접근하기도, 쉽게 사라질 문제도 아니다. 한편 동성애에 대한 태도 변화가 가족관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질서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들은 혐오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에 새로운 가치관의 재구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만큼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하느냐 하는 것이 이 사회가 어떤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인 셈이다. 이제 이런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 논의를 더 오래 고민하고 연구하여 다양한 관점과 경험을 이룬 미국교계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안내는 분명 한국교회에 새로운 도전과 울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의 저자인 잭 로저스는 성경해석과 교리 등에 관한 주제로 연구를 해오던 복음주의 계열의 신학자이며 미국장로교회(PCUSA) 총회장을 지낸 경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가 독특한 것은 다수의 신학자나 교계 인사들과는 사뭇 달리 교회와 사회에서의 동성애자들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장로교회에서의 동성애자들의 권리뿐만 아니라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보수적이며 복음주의적 입장에 있던 자신이 어떻게 동성애자들과의 공존이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신앙의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서두에서 밝히듯이 그는 “게이도 아니며 가족 중에도 게이는 없고 동성애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런데 한 교회(파사대나 장로교회)에 집사로 선출된 게이 교인이 당회로 편지를 보내 동성애자들을 교회 직분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로 인해 특별위원회가 신설되고 그 위원회에 저자가 참여하게 되면서 동성애와 관련된 여러 논의를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에게 위원회에서의 일은 단지 동성애 논쟁뿐만 아니라 나아가 교회에서 다른 이를 이해하고 분열을 치유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확신에까지 다가서게 되었다. 점차 동성애와 관련된 서로 상반된 입장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며 이 논의에 편해진다는 느낌을 받았고, 결국 처음으로 이 논의를 본격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화는 관찰과 이론의 완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개입함(참여)으로 이루어지듯이 저자는 조용한 관람자에서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이런 점에서 그는 잘 짜인 사유의 체계가 아닌 동성애자들과의 만남과 참여를 통한 예상치 못한 갈망의 분출을 솔직히 고백한다. 그는 단순하고 맹목적인 진영논리로 찬반을 논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만남을 시도하게 된 것이다. 여러 강연과 북투어(book tour)를 하며 동성애자들을 직접 만나고 “교회의 동성애자 배제정책이 초래한 엄청난 고통을 훨씬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새롭게 자신과 주위의 현실을 보며 교회 역사 속에서 지배와 종속의 구조가 존재하여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교회 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잔인한 차별과 배제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진솔함과 간절함이 담겨 있는 그의 음성을 경청해본다. 

나는 하룻밤 만에 나의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그러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만약 당신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동성애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 책을 통해 당신이 그 문제를 좀 더 온전하게 재고해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당신이 시작도 하기 전에 거부하는 대신에, 최소한 내가 전하는 내용들을 당신이 숙고해보기를 바란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울 때는 여러 차례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야만 했다. 나 역시 그래야만 했다.(58쪽) 

그렇게 그는 세상을 바꾸기 전에 자신을 변화시키는 그 과정의 길을 먼저 걸었다. 이를 통해 그는 교회가 동성애자들에 관한 논의를 재구성하여 교회 안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분열을 치유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예수! 
어디서나 성경의 권위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을 읽는 사람과 그 시대의 관점에 따라 성경의 의미가 다르게 파악되고 전해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흑인을 저주받은 인종으로 규정하는 데 성경이 사용되었고, 마녀사냥에 정당성을 붙인 것도 성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노예제도를 규탄한 것도 성경이며, 가난과 불의에 맞서 싸운 근거도, 평등을 주장한 것도 성경이다. 이런 성경의 가혹한 이중성의 혼란에 봉착하게 된다. 
동성애와 같은 치열한 논쟁의 한복판에서 “가장 정직하게 성경의 중심원리를 따르고, 공평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나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에 저자는 성경의 가혹한 이중성의 혼란과 여러 방법의 상호관계 속에서 계통질서를 설정하며 어떤 방법을 궁극적인 방법으로 볼 것인가에 집중한다. 그 궁극적인 방법에 그는 ‘예수’를 명확하게 설정한다. 책 제목에서 밝히듯이 첫 시작은 ‘예수’가 우선이다. ‘예수, 성경, 그리고 동성애’ 책 제목의 순서에서 보듯이 저자는 철저히 복음주의 신학노선을 강조한다. 자신의 시선과 관심을 ‘예수’에게 맞추려 노력한다.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인 것이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가 “설령 누가 내게 그리스도가 진리 밖에 있다고 증명해 보인다 할지라도 나는 진리보다는 그리스도 편에 머물겠다.”라고 한 것처럼, 복음주의 신학자답게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었다. 즉 ‘예수’의 삶과 사역이라는 렌즈로 ‘성경’을 바라보면 금기와 타부가 지배하는 흑백논리에 바탕을 둔 율법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훨씬 가볍고 단순하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심지어 원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바라본 성경의 목적도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것이며, 성경해석의 가장 좋은 방법도 인간의 문화적 편견 또는 관습을 버리고 예수의 모범을 따른다는 것임을 밝힌다. 성경의 중심은 바로 예수이며 교회가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고백하는 예수는 생명을 억압하는 기존체제와의 충돌을 초래했다.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보다(요 10:10) 정결법과 안식일이라는 제도의 노예가 되어가는 기존의 종교체제와 수도 없이 충돌한 분이다. 따라서 예수를 통한 성경적 이해, 창조, 죄, 구원, 사랑으로 돌아가 이런 확대된 시야를 갖고 ‘동성애’를 바라보는 것이 저자가 동성애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 사고의 틀이다. 

역사와 신화 
이런 사고의 틀로 저자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동성애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둘로 나눌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만을 인정하는 비교적 객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와 그 시대의 주관적 견해가 내재된 기록이다.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사실과 기록이 서로 충돌하는 이 지점에서 “역사라는 것은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인 동시에 진보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이라고 말하였다. 분명 역사는 과거로 소멸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반복되며 현재는 과거의 영향을 받는다. 
이 점에서 그는 미국교회들이 과거 직면했던 중요한 사회적 논쟁들의 주제인 노예제도, 인종분리와 여성의 역할 문제, 그리고 교회에서의 이혼과 재혼의 문제를 소개한다. 물론 지금이야 이런 논쟁이 과거의 한 유물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통찰에서도 나타나듯이 문제는 지금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던 과거 200여 년 동안 이 주제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느냐 하는 것이다. 즉 그는 이 같은 문제들에서 널리 퍼진 사회적 편견을 먼저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그 편견을 성경 속에 대입해서 읽었던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책에서 불편한 역사와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며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억압 역시 위와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결국 교회가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서 동일하게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고 있음을 밝힌다.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동성애에 대한 저자의 역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접근방법은 단순히 동성애의 테두리를 넘어 이후에 있을 많은 사회 문제와 물음들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그리스도인들의 자세를 성찰하고 재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논쟁은 언젠가는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간격을 좁혀 나갔는지에 대한 역사의 교훈을 통해 다른 갈등들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생각해본다. 과거의 일을 현대에 빗대어 맞추어보고 재해석해서 좀 더 성숙한 미래를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는 희망은 지나친 것일까? 
책 표지에 “신화를 타파하라”라는 자그마한 문구가 눈에 띈다. 신화! 그리스에는 신화에 등장하는 신(神)들을 흉내 내거나 마치 자신이 신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고 예언하는 무리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의 행동은 아테네 시민들의 건전한 의식을 마비시키고 몽롱하게 만들며 그 사회를 분열시켰다. 이런 현상을 보고 플라톤(Plato)은 신화의 가치나 전통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였다. 즉 신화가 부풀어 올라 마치 인간이 신이 된 양 권력을 휘두르면 합리성을 잃게 되고 혼돈과 무질서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성(Logos)에 의해 신화(Mythos)가 통제되는 사회를 이상 사회로 꿈꾸었다. 신화는 인간을 마비시키고 마술이나 주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물론 신화에 대한 맹목적인 부정으로 가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삶을 주도해서도 안 된다. 
저자는 동성애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신화적인 요소들을 초기 미국의 주된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원천인 스코틀랜드 상식철학(Scottish Common Sense Philosophy)과 프란시스 터레틴(Francis Turretin)의 스콜라 신학(Scholastic Theology), 그리고 많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의 가부장제 가족구조가 교회와 국가의 안정에 열쇠가 된다는 오래된 역사적 신념 속에서 찾았다. 이런 몰이성적이고 반지성적이며 나아가 반생명적인 신화적 요소들로 인해 동성애에 대한 접근은 맹목적이며 억압과 폭력의 양상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가 예수의 복음을 동성애에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교회가 다시 상식철학의 해석방법을 사용하고 터레틴의 신학과 유사한 방법을 가진 맹목적인 신화의 지도를 여전히 따르고 있다고 진단하였다. 
예수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신화를 건드렸다. 성전이라는 거대한 신화 속에 갇혀 만족과 안전감 속에 취해 사는 이들을 향해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막 13:2)이라고 서슴없이 말씀하셨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신화에 갇혀 살아가는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일 수 없다는 것이다. 

공포! 무지와 앎 사이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에 자연은 예측도 할 수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고 자연을 정복한 것처럼 보이고, 개인과 집단의 노력에 의해 허무맹랑한 공포기제가 점점 해체되어 가고 있는 듯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많은 것을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여전히 해체의 속도는 느리고 때로는 퇴행하고 있다. 
동성애를 포용하지 못하고 불쾌하게 여기며 적대시하는 태도를 흔히 ‘호모포비아’(homophobia), 다른 말로 ‘동성애 혐오’ 또는 ‘동성애 공포’라고 한다. 호모포비아는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와인버그(George Weinberg)가 1969년에 처음 소개하여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성애에 있어 ‘혐오’ 또는 ‘공포’는 억압과 차별로 이어진다. 혐오라는 단어에는 대상화(對象化), 타자화(他者化), 공포, 증오, 폭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고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인 자기방어와 공격기제가 ‘좋고 싫음’ 정도의 판단을 넘어서 통제불능 지점까지 다다른 것이 바로 혐오이다. 어떤 개인이나 현상을 대상화 또는 타자화하기 시작한다. 피상적인 이미지로 혐오의 대상을 구체화시켜 버린다. 이런 구체화가 극단적인 신념 또는 신앙과 만나면 기형적으로 변해 결국 폭력의 양상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혐오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화, 타자화하며 일상적 영역에서 사회 집단적인 차별과 억압, 그리고 폭력을 행하는 현상이 된다. 다른 사람의 인격이 ‘나’에 의해서 대상화되고 물화(物化)된다. 개인의 특징과 현상의 다양성을 일일이 파악할 필요가 없다. 개인은 사라지고 인격도 사라진다. 그래서 공포, 증오, 폭력의 행위가 양심에까지 닿지 않는다. 점점 몸집을 불리는 잘못된 확장으로 왜곡, 오류, 그리고 극단적인 편향성과 환상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무지(無地)로부터의 공포가 우리 속에서 점점 그 몸집을 키워나간다. 이에 저자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 이런 혐오문화가 자리 잡은 사회에 동성애자들에 대한 환대와 개방, 응답과 연대를 바탕으로 그 혐오의 고리를 끊고자 고민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이며 합리적인 해결과 접점을 찾기 위한 연구와 대화의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교회의 신학적 논의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과학적 접근의 경험에 따른 자료들까지 자세히 소개하는 친절함을 보인다. 왜냐하면 무지로 인한 공포, 그리고 그 무지는 바로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도전뿐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교단들의 동성애를 향한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소개한다. 동성애자들을 향한 무지가 앎으로 대체되고 신화와 선입견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그는 “이런 놀라운 변화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구원하시는 삶과 사역이라는 렌즈를 통해, 전에는 우리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던 몇몇 잘못된 가정들에서 자유하게 되어, 성경본문을 새로이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친절하게 책의 후미에는 일곱 번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스터디 가이드를 소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깊이 박힌 신화들과 왜곡된 역사적, 성경적 인식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을 함께해줄 것을 당부한다. 

7월이 지난 후 
성경의 문자나 교리를 앞세우면 인간의 죄가 중심이 된다.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선 사람들은 인간의 구체적인 고통보다 성경의 문자와 교리를 절대적 진리라고 앞세우던 이들이다. 성경의 문자나 교리 대신에 인간과 생명을 앞세우면 인간과 생명의 온갖 고통이 중심이 되고, 그 고통받는 이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심이 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모든 시대와 장소에는 ‘혐오’와 ‘차별’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것들이 하나하나 해체되어 온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넘어서기가 불가능할 것 같은 혐오도 한 시대의 누군가의 열정과 노력에 의해 다음 시대에는 해체되곤 하였다. 그리고 그 범위는 확장되고 세밀해져 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뿐만 아니라 교회, 그리고 사회의 성숙으로 이어진다. 하나의 새로운 충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도전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억제와 금지의 힘이 아닌 적극적인 갈망의 힘이 느껴진다. 억압이나 강제가 아닌 자유와 사랑의 목소리를 듣는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7월, 이 책을 길벗 삼아 낯선 휴가지로 떠나가 보는 것은 어떨까? 

허정섭 | 한신대학교 신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이후 잠시 맥코믹(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과 시카고 신학대학원(Chicago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였다. 현재 예닮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고, 티 내지 않고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 일상적 소재를 성경의 가치와 연결하는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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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과 미군의 차이 2260
국민학생과 초등학생의 차이 2340
한국에서 여객선을 안전하게 타는 법 2232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2320
운명의 수레바퀴는 존재하는가? 2346
도마복음의 진실 (+ 한글번역) [3] 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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