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웜홀(Wormhole)로 인도하는 안내자
  제임스 C. 월호이트, 에반 B. 하워드의 『렉시오 디비나』 아바서원

 

거룩한 독서, 즉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읽고 묵상함으로써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삶으로 흡수해 하나님의 현존체험에 이르는 방법이다. 필자는 군종목사 시절 수요기도회를 이 렉시오 디비나로 진행했다. 군병원 안의 작은 교회였는데 수요모임 참석자는 열 명 이하의 작은 규모였고 그 대부분은 이십 대 초반의 병사들이었다. 나는 인도자로서 매주 이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각자에게 온 깨달음이나 성찰을 듣는 설렘 때문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만남과 이야기가 나올까?’ 마치 미팅 자리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아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군교회 특성상 예배에 참석한 사람 중 신앙연륜이 오래된 그리스도교인은 소수다. 열 명 안 되는 구성원조차 신학생인 군종병, 외국 유학 중 늦깎이로 입대해 열심히 봉사하던 반주자, 군에 와서 세례 받은 병사, 병동에만 있으니 심심해서 호기심에 출석한 타부대 환자, 선임 손에 이끌려온 신병 등 다양했다.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점이 렉시오 디비나에 장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더 많았다. 나와 같이 신학을 공부한 목사나 군종병은 성경을 볼 때 윤리적 교훈이나 틀에 갇힌 주제에 이미 습관이 들어있어 더 어려웠다. 반대로 교회에 처음 출석했다는 한 환자는 자기의 현실을 그날 성경 본문 속에서 정직하게 반추하며 정확하게 표현해서 나를 놀라게 하곤 했다. 성경을 공부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긴 했지만,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자기 삶 속에서 말씀을 직관적으로 맛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것은 계획할 수도 없고 짐작할 수도 없다. 렉시오 디비나의 매순간이 새로운 창조였기에 기대와 긴장 가운데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첫 인상 
제임스 윌호이트와 에반 하워드의 책 『렉시오 디비나 - 거룩한 독서의 모든 것』(이후 『렉시오 디비나』)를 읽는 동안 반가움과 심심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오랫동안 이어져 오던 전통을 다시 소개하는 책이다 보니 이미 예상 가능한 내용이어서 개인적으론 심심한 면이 없지 않았고, 다른 한편으론 개신교 입장에서 안내하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했다. 렉시오 디비나가 주로 수도원 전통을 중심으로 내려온 방법이라,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한국 개신교인에겐 용어 자체도 생소하고 접하기는 더 어려운 편이었다. 오래전 렉시오 디비나로 석사논문을 준비할 때도 당시 참고자료의 거의 90%가 천주교 자료였다. 십 년도 넘은 지금 몇 권의 관련서적이 출판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개신교 내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거나 보급으로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한권이라도 더 출간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두 명의 저자가 모두 개신교 바탕의 신학자들이어서 그런지 무엇보다 개신교 독자들이 렉시오 디비나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꽤나 섬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천주교의 렉시오 디비나 관련 서적들도 개신교도가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지만, 이 책은 아직은 렉시오 디비나에 낯설 수 있는 개신교인들이 보다 용이하게 접근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부분들이 자주 눈에 띈다. 
비슷한 맥락이긴 한데 이 책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매력은 친절이다. 역사적 고찰이나 이론적 설명에 치중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예나 오해할 수 있는 쟁점에 대한 설명이 풍부하다. 물론 관련 이론이나 역사적 가치에 대한 설명 또한 적시적소에서 간결하게 풀어간다. 저자는 렉시오 디비나의 주요 논점이나 여러 이슈들에 대해 전문가로서 깊이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복잡하게 다 쏟아내지 않고 큰 맥락 가운데서 핵심을 선별하여 안내하고 있다. 단순한 듯 보이는 구성이지만 곳곳에 저자의 배려가 배어있다는 뜻이다. 

준비의 중요성 
렉시오 디비나는 각 시대마다 구성 요소가 약간씩 다르고 강조점도 다르지만 현재 우리에게 정리된 익숙한 형태는 “독서(Lectio)-묵상(Meditatio)-기도(Oratio)-관상(Contemplatio)”이다. 이것은 1100년 경 카르투시오 수도회 귀고 2세가 <수도승의 사다리>에서 언급한 방식인데, 이 책의 저자 제임스와 에반 역시 이 네 요소를 같은 순서대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만의 독특한 구성도 눈에 띈다. 그 중 하나는 위의 네 요소를 언급하기에 앞서 사전 준비와 이해를 다루며 전체 지면의 3분의 1이나 할애하고 있다. 1장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과 2장 “성경, 하나님의 말씀”, 3장 “성경을 읽는 우리는 누구인가”가 그것이다. 언뜻 보면 서론만 너무 길어 기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필자가 렉시오 디비나에 관한 책을 쓴다 해도 이렇게 쓸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주제들이다. 그것을 먼저 살펴보자. 

심적으로 가난한 상태 
렉시오 디비나는 성경 읽기 전의 마음상태가 중요하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준비가 완료됐다. 관건은 그것을 담을 ‘나’라는 그릇의 상태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말씀의 영향력이 좌우된다. 귀한 보약은 마련되어 있지만 담을 그릇이 깨져서 새거나 지저분해 오염된다면 결국 약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이치랄까. 나의 존재가 깨어있고 그것이 잘 유지될수록 렉시오 디비나의 각 요소들은 순서와 상관없이 직관을 통해 순식간에 진행될 수도 있다. 말씀이 즉각적으로 내 삶을 비추고 나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 더 깊은 하나님 현존체험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요란한 준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다는 뜻도 아니다. 저자도 계속 강조하듯이 모든 과정의 주도자는 성령이다.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심적으로 가난한가? 민감한가? 자신을 정직하게 보고 있는가? 이와 같은 성찰로 성경과 성령 앞에 나를 맡기고 마음을 연다. 이때 줄탁동시(啐啄同時)가 일어난다. 알 속 병아리가 부를 때(啐) 기다리고 있던 어미 닭 성령이 껍질을 동시에 쫀다(啄). 내 삶의 이슈가 하나님의 말씀과 적확하게 조우하는 순간이다. 

성경은 연애편지 
저자가 책 초반부터 말미까지 성경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하나님의 연애편지’이다. 얼핏 식상한 표현인 것 같지만 보면 볼수록 적절한 표현이다. 성경이 어떤 목적과 의도로 쓰인 책이며, 그래서 독자인 우리는 이것을 어떤 자세로 읽고 대해야 할지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읽기’(Lectio) 장에서 여러 성경 읽기의 방법들을 나열한 후 그중 연인의 글을 읽는 방법으로서의 렉시오 디비나를 강조한다. 나 또한 성경을 다양한 방법으로 대해왔다. 교회학교 때는 달란트를 받기 위해 조사 하나까지 암송했고, 신학생 때는 날카롭게 분석하며 읽었다. 그때는 성경 옆에 사시미도 함께 두어 비판적으로 난도질하며 읽느라 눈꼬리까지 저절로 올라간 듯했다. 큐티(Q.T.)를 하거나 초보 목사로서 설교를 준비할 때는 교훈거리를 찾느라 바빴다. 불안으로 가득할 땐 성경을 부적처럼 지니기도 했고,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는 베개가 되기도 했다. 책상에서 베고 잘 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 이만한 게 없었다. 파피루스 뭉치를 불쏘시개로 쓰든 냄비 받침으로 쓰든 그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거기에 적힌 내용에 있듯이 성경 또한 여러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성경의 가치가 스스로 가장 빛나는 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을 깊이 조명하며 하나님의 현존체험 가운데 사는 것, 즉 렉시오 디비나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하나님으로부터 온 연애편지를 통해 우리가 그 사랑을 온전히 알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이미 많은 경우 직감으로 그것을 해오고 있었다. 단지 렉시오 디비나라는 이름만 몰랐던 거고, 체계가 안 잡혀서 우왕좌왕했을 뿐이다. 이를 잘 정리해서 소개한 게 바로 렉시오 디비나이다. 

상상의 범위와 활용 
이 책에서 렉시오 디비나 중에 직면할 수 있는 문제나 쟁점들을 예리하게 잡아내어 세심하게 풀어낸 점 또한 돋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가 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직관적이고 신앙적으로 성경을 읽게 되면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공부를 통해 얻는 본문의 명백한 의미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일까?”라며 해당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과 나의 렉시오 디비나의 초점이 다를 경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경우는 렉시오 디비나 중에 자주 발생한다. 개인이 초점 맞춘 묵상 내용이 해당 본문의 일차적인 취지는 아니더라도 성경의 기본 가치관을 벗어나지 않는 정당한 주장이라면 자연스럽게 활용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머리는 자연스레 서로 강하게 연결된 연상들을 따라가기 마련”이고 그것은 각 개인이나 공동체의 당시 독특하고 중요한 이슈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하나님과 만나는 유용한 징검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의 과정에는 여전히 오역이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개인마다 성경 전체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도 명백히 나와 있는 ‘교리의 주요 항목들’과 ‘삶의 규칙’을 이해하고 ‘성경을 조명해주는 성령의 음성’에 자신을 여는 것을 저자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역사 비평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성경에 대한 사전 이해를 도모할 것을 거듭 말하고 있다. 어려운 단락에 대해서는 여유를 두고 나중에 천천히 접근하길 권고하기도 한다. 이렇듯 애매하기에 어려울 수 있는 쟁점들을 이 책은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내적 주체로서의 성령 
책 내내 저자가 또 강조하는 부분은 성령의 역할에 대한 전적인 신뢰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세 가지 요소, 즉 독자와 영감 받은 성경 텍스트, 성령의 만남이다. 여기서 성령은 독자와 성경 사이의 수많은 장애와 단절을 넘어서게 할 뿐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그 둘을 역동적으로 연결시키는 주체적인 고리이다. 저자는 “우리는 성경을 읽는 행위에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가져가고,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동안 성령이 우리의 생각과 느낌에 하나님의 생각과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셔야 한다’는 우리의 생각을 접어두고 하나님이 새로운 생명을 일으키시게 하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다”고 말하면서 성령이 활동하실 내적인 빈 공간을 강조하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의 각 요소 중 관상을 제외한 읽기-묵상-기도-행동하기는 독자의 능동적인 자세가 요구되지만 이조차도 그 바탕에는 성령의 인도와 안내가 깔려있다. 그래서 저자는 렉시오 디비나를 시작할 때나 진행 중에 수시로 성령을 초대할 것을 강조한다. 결국 성령은 내 안에서 렉시오 디비나의 실질적인 주체가 된다. 

관상(Contemplatio)에 대한 이해와 번역 
수도원 전통에 익숙하지 않는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에게는 관상(Contem-platio)라는 개념이 어렵다. 나도 대학원 시절 처음 렉시오 디비나를 접하고 논문을 쓰면서 이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대부분의 한글서적은 이를 ‘관상’(觀想)으로 번역하는데(이 글에서도 일반적인 표현인 ‘관상’을 따르기로 한다.) 사전을 찾아봐도 헷갈리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관상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수동적인 경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관상 개념의 혼동은 비단 나만의 일이 아니었다. 저자 역시 역사적으로 관상의 개념이 다르게 사용되었다는 걸 지적한다. 그러면서 관상을 “하나님 안에 안식하며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름 정의를 한 후 임재, 침묵, 사랑이라는 특징으로 풀어간다. 맛보지 않은 이에겐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저자는 특징을 잘 잡아 쉽게 설명해간다. 침묵이 곧 하나님의 임재, 받아들임, 내려놓음, 안식, 부재(不在)조차 하나님 임재의 한 공간, 사랑과 합일, 자연스러움 등 적절한 단어들을 사용하면서 관상을 돕는 실질적인 방법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 드러난 번역자의 고민이다. 나 또한 관상이라는 한자어의 뜻이 과연 적절한 번역인지 내내 의문이었는데 번역자는 ‘콘템플라시오’(Contemplatio)를 관상이 아니라 ‘관조’(觀照)로 번역했다. 관상은 자칫 ‘상(想)을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콘템플라시오(Contemplatio)의 의미를 정확히 드러낸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 번역자 또한 이런 차원에서 ‘본다’라는 의미만 강조된 관조(觀照)라는 낱말을 선택한 것 아닌지 짐작해본다. 

행동하기 
이 책만의 독특한 구성은 책 말미에도 드러난다. 앞서 설명했듯이 렉시오 디비나의 기본 요소를 ‘독서-묵상-기도-관상’으로 흔히 정의하는데 저자는 이 끝에 ‘인생의 시련 중에 행동하기’라는 요소를 덧붙인다. 이것은 성 빅토르의 휴, 마르틴 루터의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견해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각 전통마다 조금씩 다르기에 ‘행동하기’는 저자의 숙고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수도원 전통에 대한 이해가 짧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부분을 따로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나 또한 생각한다. 
말씀을 통한 렉시오 디비나는 신앙생활의 핵이지만, 책상 앞에서만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수도원 전통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항상 삶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일하는 중에도 그날 묵상 말씀을 계속 읊조렸고, 식사 때도 누군가는 말씀을 계속 낭독했다. 예배와 노래, 노동과 식사, 하루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등 일상에서 렉시오 디비나가 젖어 들 수 있는 문화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선데이 크리스천’ 생활에 익숙하다면 렉시오 디비나에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이것이다.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렉시오 디비나를 일상성과 연결시킬 수 있는 나름의 세심한 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단지 새벽기도의 ‘출석만’을 뭉뚱그려 강조하는 방식이 아닌, 말씀이 신자들의 각자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섬세한 안내가 동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목적에 따라 렉시오 디비나를 ‘행동하기’로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경 읽기와 관련하여 우리는 ‘신성한 텍스트’와의 관계가 ‘신성한 삶’으로 이어지길 갈망한다는 뜻이다.” 

공동체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아쉬움 
한 가지 아쉬운 건 공동체의 렉시오 디비나에 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이 내면의 고요한 골방에서 하나님과 조우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토대 위에 공동체가 주기적으로 렉시오 디비나의 경험을 나눈다면 또 다른 차원에서 큰 힘을 형성할 수 있다. 우선 자기가 경험한 놀라운 변화나 깨달음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그 메시지가 내 안에서 단단해지는 효과가 있다. 나눌수록 자기 안에서도 더 각인되고 충만해진다. 동시에 공동체 전체의 일치와 공감대를 이루면서 공동체성이 강화되고 자연스럽게 조율되며, 더 나아가 보완의 역할까지 한다. 공동체의 일원이 그날 렉시오 디비나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거나 개인적으론 큰 성찰을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일원의 나눔을 통해 새로운 앎이나 자극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때 그것은 남의 깨달음에 빚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나의 깨달음이 되는 것이다. 공동체의 나눔은 항상 의도한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하나님의 영이 그 나눔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창조하고 현존하기 때문이다. 

웜홀 안내자 
제임스와 에반의 『렉시오 디비나』는 저작 의도와 풀어가는 방식이 기본적으로 친절하다. 섬세하고 배려가 깊다. 이 책은 렉시오 디비나에 대한 대중적 안내서로서 가벼우면서도 헤프지 않게 구성되었다. 특별히 개신교 풍토에서 렉시오 디비나 관련 저작물들이 계속 이어진다는 건 고무할 만한 사실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보다 친근히 감을 잡는 데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는 이전엔 우리가 몰랐던 어떤 독특하고 독자적인 장르라고 보지 않는다. 사실 거룩한 독서, 렉시오 디비나라는 용어가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것도 썩 달갑지 않다. 그것은 독특하고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작게라도 해왔던 근본적인 성서 읽기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지금까지의 성경읽기 방식을 돌아보고 다듬어 가면서 성경이 시간적, 지리적 제약을 넘어 나와 하나님을 지금 여기서 현존하게 만드는 일치의 순간(Contemplatio)을 맛보자는 것이다. 그때 렉시오 디비나는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성경을 통해 나와 하나님을 이어주는 영적 웜홀(Wormhole)이라 할 수 있다. 렉시오 디비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다. 이미 성경 자체가 오래된 미래이고, 오래된 새 길이기 때문이다.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의 모든 것』은 우리가 웜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민돈후 | 목사는 한신대와 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육군 군종장교와 연세대 원주의대 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으며 지금은 삼척에 살면서 육아와 함께 삽화작업과 영성공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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