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5년 5월호)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와 '일상성 속의 증거'로서의 신앙  

 

한국 개신교회는 오늘날 860만의 교세와 교회 수 5만을 자랑하는 성장을 이루었다. 교회는 이렇게 성장했는데, 신자들의 삶과 신앙은 성장하지 못한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를 두고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은 ‘영적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심하게는 유교적 권위주의와 샤머니즘적 기복신앙과 미국적 사업주의가 결합한 거대한 ‘괴물’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에는 한국 개신교의 긍정적인 면을 보지 못한 오해와 편견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것을 남의 오해로 돌리기에는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 이제는 개신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기 성찰과 정화 그리고 영적 쇄신을 단행할 때가 되었다. 우리가 김교신을 역사 속에서 다시 불러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교신의 삶 
김교신은 1901년 4월 함경남도 함흥의 유가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에서 함흥의 시위를 주도하고 구금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기독교에 입신했다. 1921년 1월부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성서연구회’에 출석하여 귀국할 때까지 약 7년간 그에게서 기독교의 진리를 배웠다. 1927년 동경고등사범학교(東京高等師範學校= 현재 츠쿠바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는 고향인 함흥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의 교사를 시작으로 이후 서울의 양정고등보통학교, 경기중학교 등에서 약 15년간 교사로서 교육을 통한 민족의식의 각성에 힘을 쏟았다. ‘진리의 구도에 의한 자기 확립’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격을 형성하고자 했다. 스승으로서의 김교신에 대해 양정교등보통학교의 제자이자 후일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우승자가 된 손기정은 “나는 지금까지 선생과 같이 커다란 진실 된 교육자 그리고 애국을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스로 실천해온 분은 본 적이 없다. 선생은 실로 큰 분이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김교신과 함께 도쿄로 가 베를린 올림픽 예선전을 통과했는데, 그는 훗날 이때를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오직 김교신 선생님의 눈물만 보고 뛰어 우승할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한편 1927년 7월부터 김교신은 함석헌, 송두용 등의 ‘조선성서연구회’ 5명과 함께 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발행했다. 그리고 1930년 5월 제16호부터는 주필로서 「성서조선」 발행에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성서와 조선’, ‘성서를 조선에게’, ‘조선을 성서 위에’라는 목표를 내걸며 김교신이 그들의 잡지명을 「성서조선」이라고 한 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보편적인 진리로서의 ‘기독교’와 그것을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자아’와 자아가 서 있는 ‘조선의 역사적 현실’의 관계를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성서조선」을 통해 무교회적 기독교를 전할 뿐 아니라 ‘조선산 기독교’를 주장하고 예언자적 사회 비평 활동을 전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교사로서 그리고 기독교 시사평론의 잡지 발행인으로서 활동하던 그는 1942년 3월 “조와”(弔蛙)라는 글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다.  
엷은 얼음이 붙기 시작함에 따라서 개구리들의 기동이 매일매일 완연하여지다가, 나중에 두꺼운 얼음이 얼어붙은 후로는 기도와 찬송의 소리가 개구리들의 귀에 닿는지 안 닿는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수개월을 보냈다. 
봄비 쏟아지던 날 새벽, 이 바위틈에 얼음도 드디어 풀리는 날이 왔다. 오래간만에 친구 개구리들의 안부를 살피고자 연못 속을 구부려 찾았더니 오호라, 개구리의 시체 두세 마리가 연못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은가! 짐작컨대 지난겨울의 유난히 추운 날씨에 작은 연못의 밑바닥까지 얼어서 이 참사가 생긴 모양이다. 예전에는 얼지 않았던 데까지 얼어붙은 까닭인 듯. 동사한 개구리 시체를 모아 매장해 주고 보니 연못 밑에 아직 두어 마리 기어다닌다.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 

 민족의 고난을 엄혹한 혹한에 비유하며 그 안에서도 맥박치는 강인한 생명력과 민족의 부활을 노래한 이 글은 지금도 근대 한국 최고의 사회 수필로 평가받고 있다.1) ‘성서조선 사건’으로 김교신은 1년간 투옥되었다. 1944년 출옥 후 흥남질소비료공장의 조선인노동자 주택관리계의 계장으로 있으면서 약 5,000명의 조선인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노력했다. 1945년 4월 노동자들의 주택에서 발생한 발진티부스를 간호하다 그도 감염되어 25일 병사했다. 해방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김교신의 무교회주의 
그는 기독교 신앙이란 철저히 신의 사랑과 그것을 체득한 인간의 응답으로서의 믿음이라는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의 죄와 고통에 참여하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대신 죽은 신의 대속적 죽음에 의해 인간이 죄와 죽음을 이기고 신의 생명에 참여하는 완전히 새로운 자아를 선물로 받는다는 속죄 체험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이 말은 속죄론의 교리를 머리로 승인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스스로 체험하지 않은 단순한 교리나 사상, 신앙 개조로서의 승인은 무의미했다. 종교는 ‘실존적 실험’이라고 본 그는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는 속죄 신앙이야말로 ‘주체의 실험’에 의해 승인되지 않으면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기독교 신앙을 신앙인의 밖에 있는 종교적 제도나 교리의 습득이 아니라 ‘신과 나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성’ 안에서 본 것이다. 
그는 속죄 신앙에 의거해 기독교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토대 위에 자신의 존재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속죄 신앙은 한편으로 구원에 있어서 신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그 이외의 어떠한 인간적인 권위로부터도 독립하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신에게만 의지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일하는 신의 섭리와 경륜을 의식하고 어떠한 인간적인 능력이나 원조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 주체로 서는 것이 기독교인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김교신은 인식했다. 초월적 신에 의거한 독립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새로이 형성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속죄 신앙에 의거하여 ‘신 앞에서 책임적 주체’로 서려고 하는 것이 김교신의 기독교 신앙의 첫 번째 특징이었다. 
한편 그는 기독교인의 생활 그 자체를 부단한 예배 행위로 보고 모든 활동을 그리스도에 대한 봉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예배행위와 일상생활의 구분이 없었다. 기독교인은 일상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했다. ‘신 앞에서 책임적 주체’로 선 기독교인에게 자신의 신앙을 실천할 책임의 장은 다름 아닌 일상 생활의 장이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신앙 실천의 장으로서 받아들인 것이 김교신의 기독교 이해의 두 번째 특징이었다. 그는 실천이 없는 ‘말만’의 신앙을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전도에 대해서도 남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의 전도는 아름다운 언사나 문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실과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되는 일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기독교의 껍데기만 길가에 뒹구는 세대에 있어서 그러하다. 지금은 설교로 또는 소위 문서 전도로써 복음을 증거할 시대가 아니요, 신도의 전 존재 그것으로써 입증해야 할 때를 당하였 
다.”2)일상성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거하는 증인이 되는 ‘존재의 전도’만이,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전도라고 보았던 것이다. 
‘신 앞에서 책임적 주체’로 서서 일상성 속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증거하는 것이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본 김교신에게 주목할 것은 그가 인간 삶의 영역에서 특별히 사회적·정치적인 영역을 신앙적 책임의 영역으로 적극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인간 전 삶의 영역 안에서 기독교 신앙을 관철시키려 했을 때, 인간의 삶에서 특별히 종교적인 영역과 비종교적인 영역을 구별할 수 없다. 모든 일상성이 바로 종교적인 영역이고 바로 그 안에서 신앙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성서의 말씀이 인류 역사의 지향점과 일치한다는 확신 아래 성서의 말씀에 현실 역사를 조응시켜 현실을 분석하고 대응했던 예언자적 실천을 대단히 중시했다. 그는 기독교의 복음은 예언과 분리될 수 없는 상호 공속성적(共屬性的)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을 해방하여 참 주체로 세우는 기독교의 복음은, 피조물적 존재이면서 마치 창조주인 것처럼 인간을 억압하려는 모든 의식이나 제도에 비판, 항거하며 신적 공의의 공동체를 대망하는 예언과 늘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정치·사회적인 공적 영역에서 예언자적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양보할 수 없는 신앙적 실천이었다. 김교신은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침략 전쟁을 확대해가는 한복판에서 예언자적 사회비평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는 천황과 국가를 신격화하며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권력을 ‘진리의 최대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불의한 권력의 침략 전쟁을 선전하는 언론 기관을 두고 ‘조작 선전의 기관’이라고 했다. 그는 신사참배와 침략 전쟁에 저항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인이 조선인으로서 사는 것을 죄라고 하는 창씨개명도 거부했다. 그리고 인류의 정신적인 모든 유산이 압살되는 이러한 ‘암흑의 시대’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정의로운 순교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보았다.3) 그는 ‘불의한 국가’라는 괴물에게 선전포고하고 ‘순교의 피를 뿌려야만 진리의 종교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하며 정의로운 항거를 호소했다.4) 그는 ‘순교’를 두려워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조선인들을 내모는 윤치호나 서춘 등의 친일 협력자들에 대해서도 ‘사상(思想)을 유희(遊戱)하는 자’라고 비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세계사의 불의가 집약되는 식민지 조선 사회의 최저변에서 무방비적으로 상처받고 있는 ‘가장 빈색궁천(貧塞窮賤)한 자’의 최후의 한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자기를 바치는 ‘열애’(熱愛)의 책무를 지자고 호소했다.5) 불의에 대한 저항과 동시에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의 책무를 지지 않고서는 신과의 일치를 증거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정의로운 저항과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를 호소하면서 한편으로 그는 ‘힘은 정의’라는 당시의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전망했다. 자기를 회복하지 못한 마지막 하나의 식민지 국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름으로 약자의 자존을 유린하는 한, 세계사는 오직 ‘야만’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는 더 이상의 어떠한 노예의 나라도 없는 새로운 세계사를 전망하며, ‘국가의 범죄를 심판하며 세계 역사에 신의 공의’를 뚜렷이 제시하는 세계사의 변혁을 꿈꾸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사고에는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서구 ‘보편주의’의 문명사관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있었다.  
한편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신 앞에서 책임적인 주체’로 서서 일상성 속에서 신과의 일치를 증거하는 것이라고 이해한 그에게 기독교인은 중개자 없이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살아 있는 관계에 사는 사람이었다. 하여 그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별하는 교회의 계급주의에 반대했다. 그리고 신 자신의 생명에 참가하는 신앙을 고정된 제도나 형식에 가두려고 하고, 일정한 교파적 신조와 관행이 구원을 독점한다고 주장하는 교파주의나 그에 부수되는 종교적 배타주의와 불관용주의에도 반대했다. 세례나 성례전이 신앙의 본질적 요소이고 구원을 위한 불가결의 요소로 보는 율법주의적 성례전주의에도 반대했다. 요컨대 김교신은 일상성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는 책임을 신앙의 주체로부터 회피하게 하는 모든 종교적 기제와 장치에 반대했던 것이다. 
 김교신은 이러한 자신의 신앙을 담아내는 교회 형태로 ‘무교회’를 선택했다. 성직자, 성례전, 조직이라는 매개 없이 성서 강해를 중심으로 한 평신도의 성서 공부라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집회를 운영하였다. 김교신이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를 받아들여 기성 교회를 거부한 것은 교회의 부패에도 원인이 있으나,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기독교 신앙에서 교회는 비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기성 교회의 오류는 그리스도를 생활에서 만나는 본질을 버리고, 그것을 하나의 기관과 그것에 부수하는 조직, 교의, 예배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가 생각한 ‘무교회’의 핵심은 기독교 신앙에서 본질적인 것은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증거하는 것이고, 교회는 기독교 신앙에서 이차적인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따라서 그에게 ‘교회밖에 구원 없다.’라는 원칙은 타당하지 않았다. 김교신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단언하는 교회주의자에 대해서 교회의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고 항의하면서 ‘그리스도밖에 구원 없다’는 신앙적 현실 안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치열하게 신앙과 생활을 결합시키는 정신적 중심과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김교신은 그것을 성서 연구에서 구한다. 무교회주의 운동은 성서를 기독교 생활의 중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교회주의가 그들의 집회를 ‘성서연구회’라고 명명한 것은 극히 시사적이다. 그것은 그들의 집회가 다른 형태의 교회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것이 원시 기독교의 신앙적 현실로 되돌아가 그리스도와 살아 있는 만남을 가지기 위한 유일의 방법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김교신은 성서를 통해 신의 뜻을 이해하고 신과 대화하는 일 대 일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신의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의 성서의 권위를 대단히 중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근본주의나 축자영감설적 성서주의자와는 달랐다. 그의 성서 연구 방법은 진보적이고 역사 문헌학적 연구나 래디컬한 학문적 비판의 성과도 받아들였다. 사실 성서의 경전성은 그 무오성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살아 있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서의 증언 능력에 있는 것이었다. 성서의 자기 증언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김교신은 성서를 자유로운 입장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성서 해석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동시에 그는 성서의 말씀에 주체적인 투신을 요구했다. 성서를 통해 기독교인은 신 앞에 서서 일상의 지침을 얻으며 그것을 실천할 힘을 얻고, 성서의 진리에 자신의 삶 전체를 투신할 주체적·실존적 결단에 직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성서는 김교신에게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사는 책’이었다. 이러한 그의 성서 독해법에서 ‘주체성과 객관성의 분리될 수 없는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거해야 함은 무교회만의 고유한 주장이 아니라, 기독교 자체의 본래적 주장으로, 이러한 신앙을 위해 교회 조직에서 어떠한 매개를 선택할 것인가 여부는 각자의 취향이며 선택이다. 무교회가 기성교회와 그 예전을 부정하면서, ‘무’(無) 자체를 고정적인 형식으로 절대화하고, 자기 자신을 순수한 교회로서 정당화한다면 무교회도 교회주의가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김교신은 교회 문제에 대해 “만일 네 심정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교회원이 되는 전적 자격”으로 하는 교회라면 어느 교회든지 “나의 심정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며 참가하리라.”고 말했다.7) 결국 그에게 기성 교회냐, 무교회냐 하는 것 역시 궁극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구원에 있어서 부차적인 문제였다. 이렇게 보면, 김교신은 어느 교회냐 하는 문제에 매이지 않았던 무교회주의자였다. 
김교신과 본회퍼 
김교신은 ‘신 앞에서 책임적 주체’로 서서 일상성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명하는 신앙을 살아내는 것에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온전히 집중하고자 했다. 그는 하나님을 소문으로 들은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만났으며, 단순히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는 ‘군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형성해 가려는 ‘참 제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참 좋은 신앙인’은 ‘참 사람’이고 성서에 나타난 나타나엘처럼 어떠한 거짓도 없는 ‘참 한국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신앙과 삶과 역사적 책임이 삼위일체가 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기독교 신앙은 그 이상이었지 그 이하일 수는 없었다. 
이러한 김교신과 본회퍼 사이에는 몇 가지 유사성이 있다. 우선 이들의 삶이 기독교 신앙에 의거해 일본과 독일의 파시즘에 저항한 삶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두 사람의 사망일 역시 일본과 독일의 패망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김교신은 4월 25일에 병사했고, 본회퍼는 4월 9일 처형당했다. 양자의 삶이 기독교 신앙에 의거해 파시즘에 저항한 삶인 만큼 그들의 기독교 이해에도 일정한 유사성이 있다. ‘신 앞에서 책임적 주체’로 서서 정치 사회적 공적 영역을 포함한 일상성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증거하려 한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값싼 은혜’를 거절하고 ‘세상을 위한 교회’를 주장하며 시민 사회의 책임에 대해 연대할 것을 요청한 본회퍼의 신앙의 ‘성인성’(成人性)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이들이 다른 삶을 살았고 다른 경로를 거쳐 사상이 발아되었으나, 결국 사상적 유사성에 도달한 것은 기독교에 자기 쇄신을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신앙적 책임성을 가지고 그들이 성실히 응답하고자 한 결과였다고 하겠다. 
이들이 응답하고자 했던 시대의 요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 사회는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일상성을 신앙 실천의 장으로 받아들일 것과 시민적 과제에 대해 책임 있게 연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양현혜 |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목 조회 수
하루 숲 속 생활 뒤 스트레스 측정하자..놀라운 결과 - SBS 1
친한 친구끼리는 뇌파도 비슷하게 나온다…“fMRI로 뇌속혈류 측정비교” - 뉴스웍스 5
[결정비용] 뇌, 사소한 고민에도 에너지 펑펑 "결정할 때마다 피곤해" - 한국일보 15
바나나는 열대에서만 자란다? 아마추어 과학자의 엉뚱한 도전 13
20대 기억력 지닌 80대 '슈퍼에이저' 비밀 밝혀졌다 - newsis 26
국가는 가족에, 가족은 비혼자에 떠넘겨.. '돌봄의 민주화' 고민할 때 - 경향신문 36
스스로 바둑 깨우친 '알파고 제로' 나왔다..'AI 신기원' - 연합뉴스 9
엄마 얼굴 쏙 빼닮았는데… 관상-성격은 왜 다르지? - 동아일보 67
"종교는 인민의 아편"… 과학으로 입증됐다 - 아시아경제 190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유대감이 더 강해진다? - 매일경제 174
불협화음 다음에 들려오는 화음(기독교사상 2016년 7월호) - 허정섭목사 276
영적 웜홀(Wormhole)로 인도하는 안내자(기독교사상 2016년 4월호)- 민돈후목사 275
발레리나 강수진의 완벽은 없다. 171
진정한 스포츠맨쉽 176
행복이란? 212
'한숨' 쉬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일일까? 595
무표정한 당신 '공감 능력'도 떨어진다? 531
잘됐으면 좋겠다 - 홍대광 383
메멘토 모리, 죽음이 삶에게 건네다 559
요즘 엄마의 충고 498
백만장자의 내려놓음 574
|인물| 김교신 756
김교신의 무교회주의와 '일상성 속의 증거'로서의 신앙 - 양현혜교수(기독교사상 2015년 5월호) 1174
그 중에 그대를 만나 - 이선희 1147
남을 위해 기도하면, 화병이 사라진다. - 다음뉴스 2949
바램 - 노사연 2935
또 운다 또 - 다비치 2908
사랑없인 못 살아요 - 조영남 1220
오드리햅번이 아들에게 남긴 교훈 1339
기개(氣槪)를 잃지 마라! 1266
[재야인사] 계훈제선생 1753
Che gelida manina! - 오페라 라보엠 中 1244
부활, 무엇이 문제인가? - 강일상목사 (기독교사상 2011년8월호) 1960
이국주(개그우먼) 1850
심명보(화가) 2370
월리엄 셰익스피어 1639
나이의 역사 1710
공자 1651
죽기 직전에야 후회하는 다섯 가지. 2630
마이클 조던 2163
톨스토이 1727
윌슨 미즈너 2192
발타사르 그라시안 1811
공자 1676
로알 아문센 1686
마더 테레사 1687
프란치스코 교황 1614
원스턴 처칠 1943
죽은 시인의 사회 中 1624
피에르 코르네유 2149
현대인에게 가장 결핍되어 있는 것 1602
Angelo Branduardi - La grande giostra 1663
모든 사람은 이것이든 저것이든.. 1758
인간의 삶 1554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 해바라기 1656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김광석 1632
겨울은 내 머리 위에 1766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이 귀중한 것인데도.. 1783
자신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 - 최진석교수 1701
축의금 1만3천원과 사과 한봉지 2990
타인의 단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1731
가장 외로운 사람이... 1616
다시 보는 영화 "괴물" - 출처:외방정원(http://oeker.net/) 2212
초현실주의 작가 블라디미르 쿠쉬 작품감상 [13] 7710
지식에 투자하는 것 1707
번아웃 증후군 자가진단 1750
돈은 머리에 넣고 다녀라 1870
자신을 내보여라. 1655
지도자의 책임 1756
의과대학 교수들이 만든 의학 만화 6527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1722
이직률 50%의 회사 1817
이 세상에 열정없이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게오르크 빌헬름 2021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 1919
장작 2026
"매출증대비법서" 中 1995
중용 제23장 2170
불가능이란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불가능이 없다. 2057
易地思之 2029
천 개의 바람이 되어 2042
인간을 바꾸는 3가지 방법 2030
急難之朋 2034
남편의 얼굴, 아내의 마음 2037
한국군과 미군의 차이 2260
국민학생과 초등학생의 차이 2340
한국에서 여객선을 안전하게 타는 법 2232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2320
운명의 수레바퀴는 존재하는가? 2346
도마복음의 진실 (+ 한글번역) [3] 6025
XE Login